[인문학강의] '등장인물'인가, '작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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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MJfzBbFFSJ4 https://www.youtube.com/@Dali-Imagination-Space #Metafiction #메타픽션 #다층적 서술자 #작가의 죽음 #독자 반응 비평 #수용자 이론 #작가의 권위 해체 #현실과 허구의 교차 #원작과 위작의 긴장 #인물의 자기인식 #독자의 공동 창작 #위작 #플롯의 수정과 전환 #기사소설의 패러디 #서사 전통 성찰 #텍스트의 자의식 #자기 검열 #다성성 #경쟁하는 목소리 #해석의 개방성 #의미 갱신 #desengaño #engaño

[......] “어디까지가 축령산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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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가 축령산이에요?” 축령산에서 물었다 . “ 어디까지가 축령산이에요? ” “ 나는 너의 북한산이고 남산이다! ”

[문예] 로마 연극의 발자취, 메리다(Méri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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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연극의 발자취, 메리다(Mérida) 마드리드에서 서쪽 포르투갈 국경으로 9시간, 기차를 타고 닿는 엑스뜨레마두라의 작은 도시  메리다(Mérida) 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수도 마드리드에서부터 펼쳐지는 황량한 벌판을 지나 그 여행이 지루해질 만한 시간이 되면 한적하고 조용한 메리다에 들어선다. 밤 기차를 타고 간다면, 어느새 새벽이 역에 먼저 도착해 경건하게 길 손님을 맞이 해준다. 엑스뜨레마두라의 메리다(Mérida) 스페인의 도시들이 그렇듯, 늦게 공업화된 이곳은 농업, 목축업이 주된 삶의 수단으로 경제 생활은 다소 낙후된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곳은 독특한 곳이다. 로마 시대의 주요한 수도 중 하나였던 메리다의 곳곳에 자리잡은 로마 역사의 발자취는 마치 이태리의 유적들을 옮겨 놓은 듯하다. 도시의 크기에 비해 너무나도 크고 잘 만들어진 메리다 로마 유적 박물관, 메리다 외곽의 산 알빈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원형극장, 사자를 가두었다가 검투사와 결투시켰던 타원형 극장이 로마시대의 상징처럼 자리잡고 있어, 이 도시가 로마시대의 중요한 거점이었으며 특히 스페인 연극사의 중요한 발자취를 갖고 있음을 말해 준다.  그 뿐인가, 이베리아 반도 동서남북을 횡단, 종단하는 교통의 요지로 옛 로마인들이 쌓아놓은 긴 다리는 아직도 세비야와 살라망까를 잇는 역할을 거뜬히 해내고 있어, 로마인들이 이곳에 남겨 놓은 건축기술의 영향력을 확인하게 된다. 로마시대 만들어진 높은 수로 역시 세고비아의 그것에 비하면 보존상태가 좋지 않지만 대단한 위용을 자랑하고 아직도 서있다. 반원형의 연극장은 5천 명 정도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깊고 높은 언덕을 이용해 기원전 18년경에 세워졌는데, 그 당시 메리다의 인구를 다 수용할 수 있었던 연극장의 규모는 그리스에서처럼 이들에게도 연극이 중요한 일과로서 생활화되고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직경 88.50m의 반원형 극장에는 그리스 로마시대에 그랬듯이 무대 앞부분의 반원형 오케스트라(이곳은 그리스 연극에서처럼 ...

[문예] 알깔라 데 에나레스 (Alcalá de Henares), 세르반테스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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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깔라 데 에나레스 (Alcalá de Henares), 세르반테스의 고향 마드리드 주변에는 여러 작은 도시들이 있지만 마드리드가 17세기부터야 형성되기 시작했고, 그것도 20세기 들어 산업화를 거치면서 거의 아파트들로 다시 지어졌기 때문에 옛 스페인의 전형적인 도시 모습을 찾기는 어렵다. 특히 스페인이 가장 성했던 황금세기의 모습을 거의 원형대로 찾아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알깔라 데 에나레스 중앙광장 그런 면에서  알깔라 데 에나레스 는 아직도 작은 골목에, 오래된 가옥, 오랫동안 건물을 지탱하고 있는 굵은 대들보, 그 밑으로 만들어진 긴 복도같은 외부공간과 돌이 깔린 거리 등 황금세기 스페인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어 흥미롭다. 이렇게 오래된 건물들도 지금은 현대적인 인테리어로 꾸며져 까페떼리아나 바, 오락실들이 들어 차 있고, 현재를 숨쉬는 사람들로 가득하지만, 과거 세르반떼스가 거닐고, 알깔라 데 에나레스 대학의 많은 학생들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바로 그 거리를 지금 우리가 걷고 있다는 데 묘한 흥분을 느끼게 된다. 중앙 광장 주변은 교회를 비롯해서 옛 대학교 건물, 그리고 거리 등이 우리를 자연스럽게 고전의 세계로 인도하는 듯하다. 특히 차가 다닐 수 없이 좁은 거리에는 아직도 굵고 진한 색의 나무들이 건물을 지탱하고 있으며, 그 위에는 아담하고 예쁜 발코니들이 보인다.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건물의 아래, 기둥들이 만들어낸 긴 길은 비를 막을 수 있으며, 사람들이 오가다 마주치는 공간이 되어주기도 한다. 세르반테스의 집 이 거리 끝으로 가다보면 세르반떼스가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하는  세르반떼스의 집 이 있다. 당시는 길 한 귀퉁이에 있었을 것이고, 집의 규모도 작지만, 문호의 명성을 생각한다면, 한 번쯤 들러 구경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이곳은 아랍 세력에 대항한 국토 회복전이 진행되던 중, 똘레도 대주교의 주도로 1088년에 기독교인들에게 다시 회복되었고, 이후로는 많은 성직자들과 왕족 및 귀족들이 머물...

[연재소설] 귀향 (세르반테스를 만난 조선인) /1.세비야(Sevi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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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비야   “여보세요? 훌리아 하뽄이십니까?” “네, 누구세요?” “지난 번 메일로 연락드린 윤종국이라고 합니다. 제가 금방 세비야에 도착했습니다.” “아, 네 반갑습니다. 혹시, 제 연구실로 오셨으면 합니다만, 가능하세요?” 종국은 택시를 잡아타고 세비야대학교를 향했다. 그는 주스페인 한국대사관에서 근무한 적이 있고, 대사관 행사 뿐 아니라, 한국에서 사람들이 올 때마다 여러 번 세비야를 안내했기에, 이 도시는 익숙했지만, 세비야대학교에는 처음 가는 길이다. 이 번 종국의 세비야 방문은 개인적인 이유 때문이다. 현재는 외무부 본부에 근무하고 있어, 개인 휴가를 몰아서 마음먹고 스페인 행 비행기를 탔다. “반갑습니다. 제가 훌리아 하뽄입니다.” 작은 체구의 훌리아가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오래된 건물의 이 층에 자리하고 있는 그녀의 연구실은 층고가 아주 높았고, 벽에는 책들이 가득 차있었다. 훌리아는 이 대학교 역사학과 교수로, 자신의 성, 하뽄에 대한 연구로 최근 [센다이에서 세비야까지]라는 책을 냈다. 몇 년 전부터 스페인의 하뽄, 말하자면 스페인어로 일본이란 성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던 종국은 이 책이 출판되었다는 소식을 인터넷 검색을 하면서 알게 되었고, 인터넷 서점을 통해 책을 입수해 읽었다. 정확히 말하면, 스페인에서의 일본이라는 성에 대한 관심보다는, 그 사람들이 일본 사람이 아니라, 조선인들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미련을 버리지 못 하고 추적해왔다. 주문하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책이 도착했고, 급하게 내용을 읽었다. 벌써 몇 년 동안 이 주제에 대해 개인적인 연구를 해왔기에, 책의 내용을 보는 순간 자신이 그동안 탐구해온 것에 비해 특별한 발견은 없고, 다만 훌리아가 자신의 고향인 꼬리아 델 리오와 하뽄이라는 성을 가진 가족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연구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종국는 스페인 내에서 이 분야에 가장 전문가인 훌리아를 꼭 만나보고 싶었다. 외무부에서 일을 하다 보니, 개인적인 연구에 집중할 수 없었고, 거리 상 너...

[연재소설] 귀향 (세르반테스를 만난 조선인) / 연재를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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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시작하며] ​ 간절한 소망은 수 백년을 뛰어넘는 것일까? ​ 세르반테스의 펜을 움직여 [돈키호테]에 남겨진 한 영혼의 흔적! ​ 400년이 넘게 기다려왔고, ​ 너무나 애절했기에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다! ​ 그리고, ​ 이베리아 반도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한반도 남쪽의 한 마을로 이어진 무지개! ​ 그 허구같은, 그러나 역사적 실체의 다리를 건너본다! [돈키호테] 1권, 2권 ​ ‘ 제 책이 빨리 출판되기를 원하는 사람 중에는 중국의 황제가 계십니다 . 한 달 전쯤 일입니다 . 황제께서는 친히 중국어로 편지를 쓴 후 , 사신을 보내 저의 [ 돈키호테 ] 를 보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 황제께서는 학교를 세워 스페인어를 가르치겠다고 하셨으며 , [ 돈키호테 ] 를 교과서로 쓰겠다는 것과 제가 그 학교의 학장이 되어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 ([ 돈키호테 ] II, ‘레모스 백작님께 올리는 헌사’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