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강의] '등장인물'인가, '작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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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MJfzBbFFSJ4 https://www.youtube.com/@Dali-Imagination-Space #Metafiction #메타픽션 #다층적 서술자 #작가의 죽음 #독자 반응 비평 #수용자 이론 #작가의 권위 해체 #현실과 허구의 교차 #원작과 위작의 긴장 #인물의 자기인식 #독자의 공동 창작 #위작 #플롯의 수정과 전환 #기사소설의 패러디 #서사 전통 성찰 #텍스트의 자의식 #자기 검열 #다성성 #경쟁하는 목소리 #해석의 개방성 #의미 갱신 #desengaño #engaño

[짧은이야기] 개 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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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 잡기 시골집에서 갑자가 돼지가 <꽤 꽥>하고 소리를 지르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칠월칠석일 것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샘에 몰려와 있고, 아들은 낳은 사람이 대표하여 샘물을 모두 퍼내고 샘의 벽도 청소하는 날입니다. 마을 사람 모두의 축제였습니다. 닭이 갑자기 <꼬꼬 꽥>하고 평소와 다른 소리를 내는 날은 아마도 고모내외가 집에 오셨다는 뜻일 겁니다. 옛시골 집에서는 돼지, 닭, 토끼, 고양이, 개 등 여러 동물들을 키웠는데, 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집에서 잡았답니다. 어느날 <깨갱>하며 나갔던 개는 반쯤 태워진 모습으로 다시 집에 찾아왔습니다. 참으로 비참하고도 애석한 상황이어서, 봐서는 안되는 광경이었답니다. 뒤를 따라온 사나운 마을 사내들은 개를 사정없이 다시 묶어 뒷동산으로 데려갔고, 그날 저녁 밥상에 개고깃국이 올라왔고, 며칠 간 계속해서 개고기를 먹었습니다. 지구 상에 개를 잡아먹는 민족은 많이 있을 것이지만, 한민족이 그중 특별하다고 합니다. 한자의 <그럴 ‘연’>자는 원래 <그을릴 ‘연’>자였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개’가 ‘불 위’에 올려있는 모습의 글자입니다. 청년들은 마을의 뒷동산 키 큰 소나무에 개를 매달아놓고, 때린 후, 바로 그 밑에 불을 지펴 개의 털을 태웠던 것이랍니다.     민족의 전통방식대로 말이죠!

[인문학강의] [돈키호테]의 근대성 / La modernidad de [Don Quij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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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동영상 유튜브 주소:  https://youtu.be/58_rsO16Ric

[짧은이야기] 수양버들(El sauce lloró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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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선생님의 말씀을 아주 잘 듣는 아이였답니다.    전쟁 후 주변이 온통 민둥 산일 때, 나라에서는 나무심기 캠페인을 하였으니, 나무를 죽이는 것은 물론이고, 나무의 가지를 자르는 것조차 큰 죄책감을 느끼는 시기였습니다.   식목일이 다가오면서, 학교에 멋지게 서있는 수양버들을 자기 집에도 꼭 심고 싶었답니다.   이런 마음이 생기자 수양버들 한 가지라도 찾기 위해 소년은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이면, 꼭 나무 밑에서 서성거렸지만, 참으로 몸이 유연한 수양버들답게 작은 한 가지조차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하루 하루가 가고 식목일도 지나 소년의 마음이 아주 무거워진 시점에, 강한 비바람이 치는 날이 왔답니다. 이런 날 시골 마을에서 학교까지 가는 길은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아무리 강한 소양버들이라도 견디지 못 할 것’이라고 생각한 소년은 학교 가는 마음이 기대감으로 부풀었습니다.   수업이 끝나자, 기다리고 기다리던 한 작은 가지를 들고, 소년은 평소보다 훨씬 빠르게 집으로 달려왔고, 수양버들을 집 대문 바로 옆에 심었답니다.   소년의 마음을 담아 나무는 커갔지만, 수양버들이 대문 옆에 있는 것은 좋지 않다는 속설은 몰랐던 것입니다. 10년 넘게 자라 제법 곱슬한 가지를 늘어뜨릴 때 쯤, 몸둥이가 잘려졌답니다. 수양버들이 갖고 있는 주술적 해석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쑥쑥 자라는 모습을 기분좋게 지키던 소년이 공부 때문에 서울로 올라가고, 청년이 되었을 때 쯤이었답니다.   이제 학교에서도 그렇게 크고 실하게 버티고 있던 수양버들이 모두 사라져버렸습니다. 어린 시절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많은 동요처럼 말입니다.

[DQ] 서양 문예의 평가기준은 '독창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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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인문학을 잘 들여다보면, 특히 ‘문예’라는 것을 접하다보면, ‘독창성’에 ‘방점’을 두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어디서의 독창성인가를 따져보면, 결국 ‘본질’의 표현에 있어서의 ‘Originality’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본질’이라는 단어는 ‘실체’, ‘사실’, ‘진리’, 그리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이데아’라는 개념들과 상통하는 그런 것이다. 말하자면, ‘본질’을 어떻게 ‘다르게’ 표현하느냐가, 독창성의 기준이다. 기존에 없었던 방법으로 말이다. 이런 기준이라면, 어떤 사물을 사진처럼 그려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이미 진부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양미술을 볼 때, 그림에 대한 평은 이미, ‘잘 그리는 그림’이 아니라, ‘어떻게’을 그렸는가에 관심이 크다. 어떤 독특한 방법으로, 본질을 그려내고 있는가의 문제인 것이다. [돈키호테]에서의 ‘이름짓기’는, 이름을 통해 본질을 표현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본질을 모두 담아내지 못함을 작가는 인식하고 있다. 오히려, 순간 순간 이름은 달라질 수 있는 개념으로 봤다. 풍차는 방앗간도 될 수 있고, 거인도 될 수 있으며, 풍력발전의 날개나, 아이들이 들고 뛰는 바람개비도 될 수 있다. 이발사가 갖고 다니는 세수대야는 거울도 될 수 있고, 맘브리노 투구도 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겨울철 땅에 묻은 김장독을 덮는 덮개로도 될 것 같다. 그 하나의 이름이 절대적으로 어떤 사람이나 사물의 본질을 말하지 않고, 오히려 다양하게 나오는 이름들의 모음이 본질에 가까울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닫는다. 이름이 본질을 표현하지 못한다고 '포기'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풀이한다면 말이다. 미셀 푸코가 말하고 있는, ‘말’과 ‘사물’의 문제도, [돈키호테]에서의 본질과 이름 간의 관계와 다르지 않다. 기존의 말을 갖고, 자크 데리다가 고민했던 ‘음성언어’와 ‘문자언어’로의 분리와 해체, 그리고 재조립의 문제도, 결국 본질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후안 라몬...

[하루] 돌 오리 14 마리가 가을 하늘을 날아와 터를 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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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강의] 본질을 찾아서 / En busca de la Verd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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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동영상 유튜브 주소:  https://youtu.be/YMXeLliM5ko

[하루] 큰 테이블을 작은 테이블 두 개로 제작하다! (2020년 10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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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이블 (2개) 폭 78.5cm * 깊이 72cm 철재: 폭: 50mm, 두께: 3.5mm, 6m (1개 반) / 용접제작

[하루] 벽난로를 위한 받침대 제작했다! (2020년 10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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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재: 폭 100mm(10cm), 두께 5mm(0.5cm), 길이 6m (2개) / 용접제작 ​ ​ * 테이블 사이즈 90(폭) * 60(깊이)*30(높이)

[연재소설] 귀향(세르반테스를 만난 조선인) / 28.장례식(Fune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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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장례식(Funeral)   이틀 후, 세르반테스가 세상을 떠났다는 전갈을 받았다. 석희는 훈과 함께 세르반테스의 집으로 달려갔다.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정신없이 걸었다. 훈도 석희도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었다. 장례식은 성삼위일체수도원의 성당에서 거행되었다. 위대한 작가의 마지막 가는 길에 찾아온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왕궁에서 만났던 문인들조차 보이지 않았다. 너무나 쓸쓸한 장례식이었다. 세르반테스가 자신의 가난한 처지를 말하면서 [명심보감] 문구 중 ‘사람이 가난하면 시장 통에 살아도 아는 이 없고, 부자는 깊은 산에 살아도 먼 친구가 있다’고 언급했던 내용을 석희는 상기했다. 로페스 데 오요라는 선생 밑에서 세르반테스와 함께 공부했다는 몇 몇 사람들과 쓰네나가 세례식에서 스페인 왕으로부터 스페인 최고의 극작가라고소개받은 로뻬 데 베가라는 사람이 보였다.   그는 석희를 보자 가까이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세르반테스의 집과 가까운 곳에 산다고 했다. 그는 세르반테스를 존경하며 대단한 작가라고 말했다. 한편, 자신과 세르반테스의 삶은 서로 너무나 달랐다고말했다. 자신은 경제적으로도 풍부했고, 그만큼 편하게 글을 쓸 수 있었다고 했다. 다만, 인생은 공평해서, 다른 사람들은 자신을 행복한 나날로 가득 찬 사람으로 보지만, 정작 아내를 잃고, 자식을 잃는 등, 개인적으로는 슬픈 일도 많았다고 했다. 쓰네나가 일행이 로마로 떠난 것은 알고 있었는데, 최근에 마드리드에 다시 도착한 사실은 알지 못 했다고도 했다. 아울러, 자신은 이미 동양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몇 해 전에는 까따이의 공주를 다룬, [아름다운 앙헬리까]라는 희곡을 냈다고도 말했다.   최근 일본으로부터 당도하는 자료를 정리하고 있는데, 일본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 특히 정치권력의 변화와 기독교에 대한 박해를 내용으로 하는 자료들을 갖고 글을 쓰고 있다고도 했다.   석희는 그의 일본에 대한 지식에 대단히 놀랐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

[DQ] '돈키호테'로 부른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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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보통 ‘나’라고 인식하기 전부터 ‘이름’을 갖고 있다. 그 누군가가 지어준 이름으로 평생을 살아간다. 여기서 ‘누군가’는 보통, 부모가 될 것이며, 옛날로 올라간다면, 그것은 집안의 ‘권위자’가 될 것이다. 아마도, '할아버지'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름은 부르기도 좋고, 뜻도 훌륭하게 담았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 각자는 '타자'가 '그렇게 되기를 희망'하는 이름을 갖고 있다. [돈키호테]에서의 ‘이름짓기’는 몇가지 특징을 보여준다. 첫째, 등장인물이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짓는다. 그는 주변의 대상에 대해서도, 필요하면 이름을 짓는다. ‘로씨난떼’라는 말과 자신의 공주님, ‘둘씨네아’가 그렇다. 말하자면, 작가 세르반테스는 이름짓기에서 빠져있다. 둘째, 이름이 변한다. 보통 하나의 이름으로 평생 살아가지만, [돈키호테] 속의 이름은 여럿이고, 그것도 상황에 따라 변한다. 이름이라기 보다는 마치 ‘별명’같다. 물론, 이 별명이라는 것도, 그냥 유지되는 게 아니라, 또한 변한다. 셋째, 이름이 모호하다는 사실이다. 이름이 많다는 것은, 그 만큼 작품 속 모호성을 자아낼 수 밖에 없다. 이것은, 작품을 읽는 독자에게 혼란을 자아낸다. 넷째, 작가도 틀린다. 이런 저런 이름을 짓다보니, 앞에서 언급했던 이름이 뒤에서 달라지기도 한다. 의도적인 것인지, 실수인지가 판단하기 어렵다. 다섯째, 등장인물도 착각을 한다. 말하자면, 산초 판사가 자신의 아내 이름을 잘못 기억하는 것은, 그야말로 '대단한 도전'이다. 글을 쓰는 작가라면, 등장인물의 성격이나, 이름 등은 작품 내내 잘 유지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즉, 글쓰기에는 ‘논리성’이 아주 중요하다. 그런데, [돈키호테]는 전혀 그렇지 않다. 이것을 부정적으로 해석하면, 이 작품은 ‘엉터리’다. 반대로, 긍정적으로 보면, 작가의 '대단한 시도'인 것이다. 지금 우리는 후자에 관심을...

[인문학강의] 내 이름은 내가 짓는다! / Los nombres en [Don Quij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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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의 동영상 유튜브 주소:  https://youtu.be/agxpDxAuJyc

[창작시] 고비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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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낯설게 때린다 비가 아리게 쪼아댄다 모래가 갈증으로 몸을 떤다 그리움이 하늘을 두드린다 나뭇가지에서 뿌리가 난다 낙타 등에서 봉우리가 솟는다 두 봉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