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강의] '등장인물'인가, '작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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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MJfzBbFFSJ4 https://www.youtube.com/@Dali-Imagination-Space #Metafiction #메타픽션 #다층적 서술자 #작가의 죽음 #독자 반응 비평 #수용자 이론 #작가의 권위 해체 #현실과 허구의 교차 #원작과 위작의 긴장 #인물의 자기인식 #독자의 공동 창작 #위작 #플롯의 수정과 전환 #기사소설의 패러디 #서사 전통 성찰 #텍스트의 자의식 #자기 검열 #다성성 #경쟁하는 목소리 #해석의 개방성 #의미 갱신 #desengaño #engaño

[하루] 내부의 난로를 외부로 옮겼다! 용도가 달라졌다! 새로운 '공간'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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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내장벽난로를 외부로 노출하여 설치하였다! 또 다른 '맛'을 낸다! 가평에 겨울이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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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처음 하는 일은 어렵다! 그러나, 그 보람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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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지석 3개 + 평철 + 각철 + 시멘트 1포 + 타일 시멘트 1포 + 고리 2 + 와이어 + 스프레이 페인트 5통 + 방청페인트 3 + 실리콘 1 ........그리고, '정성' * 용접

[연재소설] 귀향(돈키호테를 따라간 스페인) / 29.객줏집(Venta del Quijote en Puerto Láp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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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객줏집   사절단은 마드리드에서 둘로 나눠졌다. 교황의 서신을 왕실에 전달했기에, 그에 대한 답을 기다리는 동안, 다른 일행은 먼저 세비야로 출발하기로 했다. 루이스 신부와 쓰네나가는 마드리드에 남았으며, 석희가 선발대를 이끌었다. “갑시다!” 마드리드를 떠나는 석희에게는 만감이 교차했다. 로마의 교황이 스페인 왕에게 일본 기독교인들의 요청을 떠넘긴 것도 그렇고, 스페인 왕 역시 일본의 상황이 급박하게 변화하고 있다는 정보를접하고는, 쓰네나가 일행의 은 무역 요청에 대해서도 정확한 답을 주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렇게 반갑게 맞아주고, 관심을 쏟아주더니, 결국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냉정한 모습으로 바뀐 것이다. 루이스 신부, 특히 쓰네나가의 어깨는 더욱 내려가 있었다. 로마에 갈 때와 돌아올 때 모습의 차이는 천양지차였다. 그렇다고 마드리드를 빈손으로 떠날 수는 없었다. 어떤 형태의 답이라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한편, 분리되어 있던 일본 내부는 전국시대를 거쳐 하나로 통합되는 과정에 있었고, 최종적으로는 누가 정권을 잡느냐는, 사실 상 정해지지 않아 안개 상태임을 스페인 왕실과 바티칸은알고 있었다. 특히, 교황으로부터 결정권을 부여 받았으나, 스페인 왕실 입장에서는 쓰네나가 일행이 주장하는 바를 인정했다가, 만일 그들이 정권을 잡지 못 하게 된다면,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게다가 쓰네나가의 주군이라는 마사무네는 나름 영향력은 갖고 있었지만, 단지 영주에 불과하고, 그 위에 이에야스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 사이 일본에서 돌아온 예수회 소속의 스페인 사제들이 왕실에그렇게 보고했던 것이다. 사실, 마사무네와 루이스 신부가 합작하여 사절단을 꾸린 의도는, 어쩌면 마사무네 위의 권력자인 이에야스의 정치적 소신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마사무네가 사절단을 보내면서 이에야스에게는 기독교와 관련된 임무를 말하지 않았고, 다만 스페인 왕의 은 교역과 관련된 것 만 보고했던 것이다. 사절단 파견을 무리없이 ...

[하루] 밤에는 예술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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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는 거실에 불 하나는 켜놓는다. 그 불의 위치에 따라, 천장에는 여러 모양의 그림자가 만들어진다! 사물과 그림자의 어우러짐! 밤은 이렇게 예술의 공간이 된다!

[인문학강의] [돈키호테], 현대문학이론의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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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동영상 유튜브 주소:  https://youtu.be/zNZfDV80m7M

[짧은이야기] 개 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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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 잡기 시골집에서 갑자가 돼지가 <꽤 꽥>하고 소리를 지르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칠월칠석일 것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샘에 몰려와 있고, 아들은 낳은 사람이 대표하여 샘물을 모두 퍼내고 샘의 벽도 청소하는 날입니다. 마을 사람 모두의 축제였습니다. 닭이 갑자기 <꼬꼬 꽥>하고 평소와 다른 소리를 내는 날은 아마도 고모내외가 집에 오셨다는 뜻일 겁니다. 옛시골 집에서는 돼지, 닭, 토끼, 고양이, 개 등 여러 동물들을 키웠는데, 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집에서 잡았답니다. 어느날 <깨갱>하며 나갔던 개는 반쯤 태워진 모습으로 다시 집에 찾아왔습니다. 참으로 비참하고도 애석한 상황이어서, 봐서는 안되는 광경이었답니다. 뒤를 따라온 사나운 마을 사내들은 개를 사정없이 다시 묶어 뒷동산으로 데려갔고, 그날 저녁 밥상에 개고깃국이 올라왔고, 며칠 간 계속해서 개고기를 먹었습니다. 지구 상에 개를 잡아먹는 민족은 많이 있을 것이지만, 한민족이 그중 특별하다고 합니다. 한자의 <그럴 ‘연’>자는 원래 <그을릴 ‘연’>자였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개’가 ‘불 위’에 올려있는 모습의 글자입니다. 청년들은 마을의 뒷동산 키 큰 소나무에 개를 매달아놓고, 때린 후, 바로 그 밑에 불을 지펴 개의 털을 태웠던 것이랍니다.     민족의 전통방식대로 말이죠!

[인문학강의] [돈키호테]의 근대성 / La modernidad de [Don Quij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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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동영상 유튜브 주소:  https://youtu.be/58_rsO16Ric

[짧은이야기] 수양버들(El sauce lloró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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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선생님의 말씀을 아주 잘 듣는 아이였답니다.    전쟁 후 주변이 온통 민둥 산일 때, 나라에서는 나무심기 캠페인을 하였으니, 나무를 죽이는 것은 물론이고, 나무의 가지를 자르는 것조차 큰 죄책감을 느끼는 시기였습니다.   식목일이 다가오면서, 학교에 멋지게 서있는 수양버들을 자기 집에도 꼭 심고 싶었답니다.   이런 마음이 생기자 수양버들 한 가지라도 찾기 위해 소년은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이면, 꼭 나무 밑에서 서성거렸지만, 참으로 몸이 유연한 수양버들답게 작은 한 가지조차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하루 하루가 가고 식목일도 지나 소년의 마음이 아주 무거워진 시점에, 강한 비바람이 치는 날이 왔답니다. 이런 날 시골 마을에서 학교까지 가는 길은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아무리 강한 소양버들이라도 견디지 못 할 것’이라고 생각한 소년은 학교 가는 마음이 기대감으로 부풀었습니다.   수업이 끝나자, 기다리고 기다리던 한 작은 가지를 들고, 소년은 평소보다 훨씬 빠르게 집으로 달려왔고, 수양버들을 집 대문 바로 옆에 심었답니다.   소년의 마음을 담아 나무는 커갔지만, 수양버들이 대문 옆에 있는 것은 좋지 않다는 속설은 몰랐던 것입니다. 10년 넘게 자라 제법 곱슬한 가지를 늘어뜨릴 때 쯤, 몸둥이가 잘려졌답니다. 수양버들이 갖고 있는 주술적 해석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쑥쑥 자라는 모습을 기분좋게 지키던 소년이 공부 때문에 서울로 올라가고, 청년이 되었을 때 쯤이었답니다.   이제 학교에서도 그렇게 크고 실하게 버티고 있던 수양버들이 모두 사라져버렸습니다. 어린 시절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많은 동요처럼 말입니다.

[DQ] 서양 문예의 평가기준은 '독창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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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인문학을 잘 들여다보면, 특히 ‘문예’라는 것을 접하다보면, ‘독창성’에 ‘방점’을 두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어디서의 독창성인가를 따져보면, 결국 ‘본질’의 표현에 있어서의 ‘Originality’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본질’이라는 단어는 ‘실체’, ‘사실’, ‘진리’, 그리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이데아’라는 개념들과 상통하는 그런 것이다. 말하자면, ‘본질’을 어떻게 ‘다르게’ 표현하느냐가, 독창성의 기준이다. 기존에 없었던 방법으로 말이다. 이런 기준이라면, 어떤 사물을 사진처럼 그려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이미 진부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양미술을 볼 때, 그림에 대한 평은 이미, ‘잘 그리는 그림’이 아니라, ‘어떻게’을 그렸는가에 관심이 크다. 어떤 독특한 방법으로, 본질을 그려내고 있는가의 문제인 것이다. [돈키호테]에서의 ‘이름짓기’는, 이름을 통해 본질을 표현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본질을 모두 담아내지 못함을 작가는 인식하고 있다. 오히려, 순간 순간 이름은 달라질 수 있는 개념으로 봤다. 풍차는 방앗간도 될 수 있고, 거인도 될 수 있으며, 풍력발전의 날개나, 아이들이 들고 뛰는 바람개비도 될 수 있다. 이발사가 갖고 다니는 세수대야는 거울도 될 수 있고, 맘브리노 투구도 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겨울철 땅에 묻은 김장독을 덮는 덮개로도 될 것 같다. 그 하나의 이름이 절대적으로 어떤 사람이나 사물의 본질을 말하지 않고, 오히려 다양하게 나오는 이름들의 모음이 본질에 가까울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닫는다. 이름이 본질을 표현하지 못한다고 '포기'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풀이한다면 말이다. 미셀 푸코가 말하고 있는, ‘말’과 ‘사물’의 문제도, [돈키호테]에서의 본질과 이름 간의 관계와 다르지 않다. 기존의 말을 갖고, 자크 데리다가 고민했던 ‘음성언어’와 ‘문자언어’로의 분리와 해체, 그리고 재조립의 문제도, 결국 본질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후안 라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