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국은 해남에서 태어났다. 집과 그 주변을 감싸는 커다란 나무들이 집과 가문의 긴 역사를 말해주었다. 그가 어렸을 때, 집 앞의 굵은 나무들은 물론, 자신의 집은 매우 컸다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어 타지의 기와집들과 비교할 기회가 있었지만, 자신의 오래된 집이 결코 작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종국의 어린 시절 추억은 거의 모든 게, 집과 그 주변에서 만들어졌다. 그 기와집에는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서첩들이 참으로 많았다. 종류와 내용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종국의 아버지는 그것들을 보존하는 게 장손인 자신에게 주어진 평생의 임무로 생각하고 있었다. 어떤 때는 자식들보다도 더 귀하게 다루고 우선 시하는 아버지를 보고, 종국은 서운한 마음이 들었던 적도 있었다. 한편, 누구를 만나도, 종국이 해남에서 태어난 윤씨라고 하면, 늘 그에게 묻는 게 있었다. 윤선도며, 윤두서, 그리고 좀 더 깊이 아는 사람들은 정약종, 정약전, 정약용 등 삼형제를 나열하고는 집안의 내력에 대해서 묻곤했다. 그들은 두 집안의 연결고리를 아는 사람들이다. 물론, 정약용의 실학사상과 수원 화성 축조의 특징, 그리고 당시의 발전된 과학기술과 건축술에 대한 이야기로 내용을 확대하는 사람들도 간혹 만날 수 있었다. 종국은 그것들에 대해서는 자세히 모르지만, 집안에 내려오는 많은 물건과 화첩, 서첩 중에 다른 것들과는 확연히 다른 이색적인 것이 있음을 어렸을 때부터 보고 들어왔다. 하나는 은 목걸이였고, 하나는 오래된 편지였다. 특히, 은 목걸이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있는 형상을 담고 있었다. 비교적 작지만 아주 정교하게 세공되어 있었다. 오랜 시간의 흔적을 보이는 그 물건이, 특히 십자가가 달린 목걸이가 언제부터 집안에 보관되어 내려오는 지에 대해서는, 그것을 보물처럼 여기시는 아버지조차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가 고등학교 때 우연히 살펴본 문서는 한자와 함께 중간 중간에 영문 알파벳으로 된 몇 몇 글자가 있었다. 한편, 그 알파벳이 스페인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은 대학입학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