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 발렌시아(Valencia)의 파야(Falla) 축제

이미지
발렌시아(Valencia)의 파야(Falla) 축제 지중해에 면해 있으며 까딸루냐의 바람과 까스띠야의 바람이 만나는 곳, 기독교 문화와 아랍 문화가 조화롭게 구성된 지역이 ‘발렌시아’이다. 마드리드에서 발렌시아까지 비행시간은 30분 정도. 자동차로 가면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발렌시아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그리 멀지 않기 때문에 비행기를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발렌시아 해변 발렌시아 도심  특히 이 지역권은 알맞은 기후 조건으로 가구 제품이 많이 만들어지며 과일 농사도 성행한다. 다량의 가구 생산은 지중해 주변 지역에서 자라는 나무의 풍부함을 말해 주는데, 가구 가공에서 나오는 나뭇조각과 껍질 등을 태우던 풍습이 지금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파야 축제’(Fallas)를 만들어 냈다. 그런 부산물들이 주원료가 되어 다양한 모양의 동상과 인형으로 탈바꿈되고, 그것들을 마을의 광장 등에 전시해 두었다가 파야 날에는 일시에 태우는 것이다. 스페인 사람들답게 축제의 형태로 말이다. 스페인 사람들은 이렇게 일보다는 즐기는 데서 더 의미를 찾는다. 아니 일을 즐기며, 일이란 즐기기 위해 하는 행위일 뿐이다. 발렌시아의 봄 축제, 파야(Falla)   파야 축제에 전시되는 인형의 크기는 대단하며, 그 열기와 태우는 재미가 커서 세계 각지에서 이 축제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파야(Fallas) 축제의 장면 한편, 꼬무니닷 발렌시아나, 즉 발렌시아를 싸고 있는 광역권의 주요 도시는 발렌시아를 비롯하여 여름 휴양지로 세계인들이 모여들어 휘청거리는 ‘베니도름’이 주변 해안 도시들과 어울려 ‘꼬스따 블랑까’(백색 해안)를 형성하고 있다. ‘알리깐떼’는 발렌시아 다음으로 큰 도시이다. 파야 축제 장면 축제 기간이 되면 조금은 들뜬 분위기로 길거리에 사람들이 넘치며 여기저기서 폭죽 터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파야에 가까워졌다는 신호이다. 임신부가 아니더라도 심장이 약한 사람이라면 갑작스러운 폭죽 소리에 놀라지 않도록 주변에 아이들이 무리 ...

[문예] 또마띠나(Tomatina, 토마토) 축제

이미지
또마띠나(Tomatina, 토마토) 축제 빠에야는 스페인 전역을 통틀어 가장 유명한 음식의 하나이며, 한국 사람들을 비롯하여 외국인들에게 스페인 음식 하면 제일 먼저 꼽히는 특별한 먹거리이다. 쌀로 만들어져 특히 한국 사람들에게 익숙하지만 가격이 비싸지 않고 양도 많으며 무엇보다 노란색의 밥이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이베리아 반도에 쌀이 들어온 것이 711년 아랍인들의 진출 이후이므로, 빠에야의 출발은 8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며, 그 기원이 바로 아랍 세계였음을 알 수 있다. 스페인어로 쌀을 의미하는 ‘아로스’란 단어는 같은 뜻의 아랍어 ‘알루즈’에서 온 것이다. 쌀은 특히 과달끼비르 강이 흐르는 안달루시아 지역과 에브로 강이 흐르는 까딸루냐 지역에서 풍부하게 경작된다. 유럽에서 쌀농사를 짓는다면 상상하기 어렵지만 스페인의 쌀은 그런대로 광범위하게 경작되며 질도 높은 편이다. 빠에야 빠에야를 만드는 방법은 지방에 따라 다르다. 아니 지방에 따라 빠에야가 다르다. 먼저 세비야나 까디스처럼 남부 해안 지역에서는 쌀에 사프란을 넣어 노란색으로 물들이며, 거기에 새우와 가재, 게, 생선 등 해산물들을 집어넣는다. 발렌시아 지역에서도 빛깔은 노란색이지만 콩이나 달팽이, 닭, 돼지고기 등 육류가 들어간다. 원래는 오리고기나 개구리, 생선 등으로 만들지만 각 지역의 산물에 따라 그 재료가 달라진 것이 현재의 빠에야이다. 빠에야는 넓고 둥글며 깊은 프라이팬 같은 그릇에 넣고 끓이므로, 식당에서 1인분을 시키는 경우는 드물고 적어도 2인분을 시켜야 주문이 이루어진다. 만들어 놓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일일이 만들려면 적어도 30분 이상 걸린다고 봐야 한다. 빠에야를 먹으려면 식당에 미리 전화 예약을 해 놓거나 들어가자마자 주문부터 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무엇보다 야외에서 여러 식구들이 만들어 먹기 좋으며, 각자 접시에 적당량을 덜어 먹으면 된다. 각 지역, 특히 시골의 축제 때 빠에야는 마을 전체의 음식이 된다. 마을 사람 전부가 먹을 수 있을 만큼 큰 냄비를 여럿이 덤벼...

[문예] 피레네 산맥 속 두 얼굴, 안도라(Andorra)

이미지
피레네 산맥 속 두 얼굴, 안도라(Andorra) 스페인을 설명하면서 안도라를 떼어 놓을 수는 없다. 물론 안도라는 프랑스와 면해 있는 지중해 연안의 모나코(Monaco)와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 중의 하나로 취급받고 있지만, 이곳은 전통적으로 스페인 땅, 적어도 바르셀로나(Barcelona)가 속한 까딸루냐(Cataluña)에 포함되는 지역이었다. 안도라(Andorra) 피레네의 중앙에 위치한 안도라   겨울이 길고 눈이 많으며 여름에는 비가 잦은 산악에 위치한 안도라는 특히 겨울에 바쁘다. 스페인에는 남부에서부터 북부까지 스키장이 고루 발달해 있어서 어디서든 접근하기가 쉬운데, 북부의 깐따브리아(Cantabria) 산맥에 형성된 스키장('삐꼬스 데 에우로빠'Picos de Europa의 '레온'Leon 지방에 분포함)과 마드리드 근교의 나바세라다(Navacerada) 지역, 그라나다(Granada) 근처의 시에라 네바다(Sierra Nevada)에 형성된 스키장 등이 있지만, 피레네에서 스키를 탄다는 것은 독특한 감상을 배가한다. 긴 슬로프에 산 전체가 스키장이다. 이 산 저 산을 넘으면서 느끼는 성취감 내지 위대함은 이루 형용할 수 없는 즐거움으로 이어진다.  안도라 전경 안도라의 야경   그렇지만 재미에 빠져 산 하나를 넘어서 방향을 잘못 들었다면 스페인어가 어색한 지역에 닿을 수도 있다. 바로 프랑스 쪽 안도라이다. 당황하지 말고 동일한 방법으로 올라가 반대로 내려오면 될 뿐, 월경의 문제는 전혀 없다.  스페인과 프랑스를 담은 안도라 국기 이 지역이 까딸루냐에 속하게 된 것은 아랍인들이 쫓겨난 13세기 이후의 일이다. 그 후 프랑스와의 국경 문제로 1659년 피레네 협정에 따라 양국을 경계하는 지역으로 선포되었으며, 1년의 반은 스페인이 그리고 다른 반은 프랑스가 관리하였으나, 지금은 독립해 그들의 정치적 영향권 밖에 존재한다. 물론 안도라에는 공항이 없고 사방이 프랑스와 스페인으로 막혀 ...

[문예] 급하면 까페떼리아(Cafetería)로

이미지
급하면 까페떼리아(Cafetería)로 스페인은 상당히 건조한 나라이다. 일정한 정착지 없이 여행을 계속하다 보면 한국에서보다 목이 더 마를 수 밖에 없다. 덥고 건조한 기후이기 때문에 한 번 갈증을 느끼기 시작하면 참을 수 없을 정도가 되지만, 타오르는 갈증을 물로 축이는 기분 만은 극대 치로 맛볼 수 있다. 목이 말라도 타는 듯이 마르며 그 순간 찬 콜라, 맥주, 얼음물을 들이켜는 기분은 그야말로 황홀하다. 스페인은 맛이 다르다는 말이 나올 만하다. 스페인에서는 콜라 소비가 다른 나라보다 눈에 띄게 많으며, 톡 쏘는 느낌을 주는 여러 가지 음료수가 개발되어 있다. 커피숍 (야외) 수분을 많이 섭취하지만 그만큼 또 많이 증발하므로 스페인에서 화장실 갈 일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여행자라면 화장실이 어디에 있는지 정도는 항상 알아 두어야 할 텐데, 스페인에서 공중화장실, 적어도 건물에서 화장실을 찾는 일은 포기하는 게 좋다. 외부 사람들에게 개방되어 있지 않을 뿐더러 그리 많지도 않다. 레스토랑 (야외)  그렇다면 어디서? 길을 가다 대충 큰 건물이라고 들어가 화장실을 찾으면 큰코다칠 수 있다. 건물마다 경비실이 있어서 제지당하기도 하지만, 문이 거의 닫혀 있기 때문이다. 화장실(Aseos) 그러나 화장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오히려 가까운 데에 있다. 주변에서 얼마든지 만날 수 있는 까페떼리아(Cafeteria)나 바(Bar)에 들어가면 된다. 커피 한 잔을 시켜 놓거나 맥주 한 잔을 주문해 놓고 화장실에 잠시 들러 해결하는 게 좋다. 화장실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바닥부터 천장까지 구석구석 말끔하게 닦는 이곳 사람들의 청소 기질을 보여 주듯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다. 화장실  스페인어에는 화장실을 표시하는 단어가 여러 개 있는데, 일반적으로 ‘라바보’(Lavabo)나 ‘세르비시오스’(Servicios), ‘아세오스’(Aseos)라고 되어 있고, ‘바뇨’(Bano), ‘또일레떼’(Toilet) 등도 화...

[문예] 나혜석의 스페인 여행 (스페인과 한국)

이미지
나혜석의 스페인 여행 나혜석에 대한 관심은 [자화상]에서 출발했지만, 사실 작품보다는 그녀의 삶이 더욱 흥미롭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여성으로서 교육을 받고, 서양미술로 일본 유학을 갔었다는 점도 특이할 수 있으나, 당시 보통사람이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고, 실제로 감행했다는 점에서 평가받을 만 하다.  [스페인 항구] 1927년에 부산을 떠나, 프랑스의 파리를 비롯, 이탈리아의 밀라노, 러시아의 레닌그라드, 모스크바,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와 독일의 베를린, 영국의 런던 및 알프스산을 비롯, 스위스와 벨기에 등에 가고, 그곳의 유적과 박물관, 미술관들을 방문한 바 있다. 물론 잠시 스페인도 간 적이 있다. 귀국 길에는 나이아가라 폭포, 시카고, 그랜드 캐년, 로스앤젤레스, 마리포사 대삼림 등을 거쳐 샌프란시스코에서 배편으로 들어오면서, 하와이, 요코하마, 도쿄를 거쳐 1929년 3월에 귀국한다. 이렇게 보고, 경험한 것을 [삼천리]와 [중앙]이라는 월간잡지에 게재하였으니, [열정의 서반아행]도 그 중의 하나다. 나혜석이 유럽에 있으면서 그린 작품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 [스페인 항구], [스페인 국경], [스페인 해수욕장]는 내 관심을 끈다. 작품이 갖는 예술성에 대해서보다는, 어쩌면 그곳이 정확히 어딘 지에 대한 호기심일 것 같다. [스페인 국경] [스페인 해수욕장]에 보이는 산과 건물들 모습이 분석의 단서를 제공하는데, 현재 구글에 나오는 사진들을 검토해본 결과, 스페인 서북부 산 세바스띠안(San Sebastian)에서도 유명한 쁠라야 데 라 꼰차(Playa de la Concha, 조개해변)임을 알 수 있다. 이국의 아름다운 호텔 빨라시오 데 미라마르(Palacio de Miramar)에 머물면서 방에서 보이는 해변을 그림으로 옮겼던 것이다. 당시 독일에 있던 남편 대신, 조선의 다른 남자와 함께 여행을 하고 있었으며, 그 때 그녀는 자유연애를 주장하고 있었다.  [스페인 해수욕장] 조선의 땅에서 태어난 한...

[문예] 몬세랏(Montserrat)의 얼굴들 (바르셀로나)

이미지
몬세랏(Montserrat)의 얼굴들 주변이 대부분 소나무로 채워진 보통의 길을 가다가 불현듯 이물이 높이 돌출되어 있는 신기루를 바라보는 순간, 드디어 말로만 듣던 ‘몬세랏’을 향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나무 사이사이로 보이는 기암괴석의 무리는 각도를 달리할 때마다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데, 서 있는 듯, 누운 듯, 다정히 이쪽을 바라보는 듯, 토라져 저쪽을 바라보는 듯, 나무들이 범접할 수 없는 높은 곳에 신들이 자리 잡고 있는 듯, 괴물들이 아직 자신의 영토를 내놓지 않고 힘을 과시하는 듯, 각양각색이다.                                   멀리서 보이는 몬세랏 길게 이어지고, 저만치서 첫인사를 날린 바위산들을 돌아 더 깊게, 그리고 더 가까이 다가가면, 둥글었던 돌들은 이내 네모로 깎여 땅에 박혀 있고, 터널은 문이 되어 굽이굽이 속살을 드러낸다. 마치 동물원을 움직이며 관람하듯, 거대한 미술관을 차를 타고 관람하듯, 끝없이 펼쳐진 몬세랏의 예술은 저기 안쪽 인간이 만들어 놓은 건축물, 수도원에서 또 하나의 해석을 요구한다. 잘 다듬어진 자연의 조각품 사이로 직각 형태의 건물이 나타나면, 우리는 그것이 웅장하고 위엄 있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작은 모방일 뿐임을 느끼게 된다.                    몬세랏의 기암괴석 큰 얼굴들이 아래쪽을 굽어보는 가운데, 크고 작은 돌들로 정교하게 빚어낸 수도원 또한 규모에 있어서는 대단한 작품이다. 굵은 곡선이 원형으로 돌려지고, 직선의 기둥들이 조화를 이루는 내부에 들어서면 이미 이 구조물의 웅장함과 섬세함, 그리고 화려함에 빠져 다른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신에 대한 모방이 낳은 인간의 또 다른 위대함을 실감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