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강의] '등장인물'인가, '작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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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MJfzBbFFSJ4 https://www.youtube.com/@Dali-Imagination-Space #Metafiction #메타픽션 #다층적 서술자 #작가의 죽음 #독자 반응 비평 #수용자 이론 #작가의 권위 해체 #현실과 허구의 교차 #원작과 위작의 긴장 #인물의 자기인식 #독자의 공동 창작 #위작 #플롯의 수정과 전환 #기사소설의 패러디 #서사 전통 성찰 #텍스트의 자의식 #자기 검열 #다성성 #경쟁하는 목소리 #해석의 개방성 #의미 갱신 #desengaño #engaño

[논문과 기고문] 우나무노의 [안개]에 나타난 ‘작가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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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muerte del autor en [Niebla] de Miguel de Unamuno 우나무노의 [안개]에 나타난 ‘작가의 죽음’ - Desde la perspectiva metanovelesca (메타소설의 관점에서) - I. INTRODUCCIÓN Sobre la muerte de Augusto Pérez 1) en la novela de Miguel de Unamuno, Niebla, 2) hay diversas interpretaciones posibles. Sobre todo, la crisis religiosa de nuestro autor que es una de las definiciones más frecuentadas por los críticos, por ofrecernos con esta decisión crucial del personaje unamuniano frente a Unamuno-personaje el motivo de relacionar la época de su crisis religiosa o, mejor dicho, la confusión de su fé con el momento de escribir esta obra, considerada como una de sus creaciones principales. Otro enfoque podría ser el que proponemos a continuación: una nueva visión que llamaremos "la perspectiva metanovelesca", 3) y que nos permitirá otra interpretación sobre este comportamiento del protagonista. Ésta es la meta de nuestro artículo. ...

[연재소설] 귀향(세르반테스를 만난 조선인) / 22.바르셀로나(Barcelo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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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바르셀로나 일행은 마드리드에서 예상보다 시간을 많이 지체했다 . 약 9 개월 정도 머물면서 스페인 왕실의 특별한 관심에 따라 공식 행사도 많았으며 , 가장 실권자인 레르마 공작을 비롯해서 교황청에서 보낸 대사 등 스페인의 많은 고위인사들과도 만났다 . 쓰네나가는 마드리드 왕궁 가까이에 있는 왕실 전용 사냥터인 까사 델 깜뽀에서 펠리뻬 왕과 사냥을 하는 등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으며 시간을 보냈다 . 한편 , 사절단의 일행으로 온 루이스 신부는 물론 , 현재 일본에 있는 선교사들의 많은 수가 스페인 사람들이다 보니 , 일일이 그들의 가족들과 만나는 일도 중요했다 . 가족들은 마치 자신의 아들이 집에 온 것처럼 반겼고 , 일본으로 돌아가서 전달해달라고 편지도 써줬다 . 아무리 신에게 자식을 바쳤다 해도 , 부모의 입장에서는 전혀 알지 못하는 먼 땅에서 사역을 하고 있는 자식의 안위 만을 바라고 , 한 시도 쉼없이 기도한다고도 했다 . 로마 방문에 대한 교황청으로부터의 공식 승인도 늦게 났다 . 인편을 통해 소식을 전하고 받아야 하는 물리적인 시간도 그렇지만 , 교황청 내부의 절차에 따라 답을 내는 데에도 시간이 지체되었다고 한다 . 일행은 이 시간을 이용해 마드리드 주변을 구경했다 . 방문한 곳 중에서 , 석희에게 가장 인상적인 곳은 엘 에스꼬리알 궁전이었다 . 왕실에서 운영하는 여러 개 궁전 중에서 가장 규모가 컸는데 , 산 위에 드러난 건물의 위용은 참으로 웅장했다 . 마드리드에서 말을 타고 빨리 달리면 한나절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 펠레뻬 2 세가 프랑스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베르사이유 궁전보다 더 큰 궁전을 짓겠다는 야심의 결과물이라고 했다 . 파리까지 진격하여 , 프랑스 왕으로부터 신교로 전환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그는 , 궁전을 짓는 동안 불편한 다리에도 불구하고 수 없이 오가면서 직접 지휘를 했다고 하니 , 이 건물에는 스페인의 영광과 자부심이 담겨있다 . 스페인이 기독교 세계의 중심이면서 자신은 그 수호자가 되겠다는 ...

[인문학강의] 둘씨네아는, 있다? 없다? / Dulcinea, ¿existe, o no exis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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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의 동영상 유튜브 주소:  https://youtu.be/Th7bXSao7jc

[인문학강의] 산초가 달라졌어요! / De conocer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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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의 동영상 유튜브 주소:  https://youtu.be/9uabQdFFmas

[짧은이야기] 벨라스께스, 그림 속으로 들어가다! (Velázquez, o el caballete fantástico)(IV-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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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스께스, 그림 속으로 들어가다!(IV-4) 나 .- 이 그림은 뭔가? 벨레스께스 .- ( 중앙의 어린 아이를 가리키며 .) 마르가리따 공주님과 여러 궁녀들일세. 제목은 ‘왕가’(Retrato de familia)이지. 나 .- 아, 이게 바로 자네가 1년 이상 끌어오고 있는 그 그림이구먼. 벨라스께스 .- 그렇다네, 난 이 그림에 내 모든 혼을 불어넣으려고 했지만, 그만 벽에 부딪히고 말았네. ( 힘없이 자리로 돌아가며 .) 거의 막바지에 왕이 자신의 모습을 마르가리따 공주 대신 그 자리에 넣어달라는 게 아니겠는가. 난 그럴 순 없었지. 이건 희망의 그림이거든. 만일 왕과 왕비가 들어온다면 그건 내가 원하는 그림이 될 수 없지. 나 .- 난, 잘 이해하기 힘들군. 왕의 명이면 그 신하로서 복종해야 되는 게 아닌가? 그리고 왕이 공주와 함께 있다면, 당연 왕의 자리가 정 중앙에 가장 크게 그려져야 되는 게 아닐까? 더구나 왕가의 그림이라면 더욱 그렇지. 벨라스께스 .- ( 약간 화를 내서, 격앙된 목소리로 .) 모르는 소리. 이건 미래의 그림이야. 그 속에 과거가 중심에 위치한다면 말도 안돼. 미래의 그림은 미래를 준비하는 그림이며, 미래의 순간을 기다리는 것이지. 왕은 과거일 뿐이고, 그의 미래를 그린다면, 그것은 아마도... 벨라스께스는 ‘왕가’란 그림에 온 정열을 쏟아 부었다. 그는 온 생을 정리한다는 의미에서 이 그림을 대했고, 스페인의 운명을 그려 넣겠다는 의도에서 더욱 숭고한 뜻을 품고 있었다. 단순한 현실을 미화하는 그런 의미보다는 스페인의 모든 것을 상징해 넣어보려는 의도에서 시작되었는데, 왕이 이 그림에 참견하기 전까지는 그림이 그런대로 잘 되어가고 있었으나, 어느 날 화실을 들른 왕이 관심을 표명하면서 제안한 지시가 있은 후, 벨라스께스는 홍역 같은 긴 시름의 터널에 와있었던 것이다.                         ...

[짧은이야기] 벨라스께스, 그림 속으로 들어가다! (Velázquez, o el caballete fantástico)(IV-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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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스께스, 그림 속으로 들어가다!(IV-3) 벨라스께스는 1599년 6월 6일 세비야에서 태어난다.  이 시기는 스페인이 정치적으로 하락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으며, 그가 성인이 되어 세상에 대해 더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스페인이 과거의 것을 단지 향수로 밖에는 접할 수 없었던 시점이었다.  카톨릭 양왕에서 시작된 스페인의 영광은 그들의 손자 격인 까를로스1세 때에 더욱 무르익어 갔으며, 1598년 까지 통치한 펠리뻬2세에 이르러서는 가장 넓은 땅을 소유하게 되었으나, 그것도 잠시, 당대에 벌써 쇠락을 맛봐야 했다.  영토가 워낙 넓고, 다양한 지역에 위치하다보니 전쟁이 끊일 날이 없었고, 전쟁과 아메리카대륙 진출로 스페인 본토의 인구는 날로 줄어만 갔다. 그리고 하락하기 시작한 스페인은 펠리뻬3세에 이어 벨라스께스가 궁정화가로 있었던 펠리뻬4세 때에는 이전 시대에 비한다면 아주 저 밑에까지 닿았던 것이다.  고향 세비야에서 처음 프란시스꼬 빠체꼬를 만나 그림을 배우게 되었고, 이 당대 그림을 대표하는 선생은 제자의 성공을 점쳤으며, 그 믿음 속에 딸을 내주기도 하였다. 그는 1622년 당대 최고의 문인인 루이스 데 공고라의 초상화를 그린 것으로 마드리드와 궁정생활이 시작된다.  물론 남부 세비야를 중심으로 일어난 그림의 추세는 당시 유럽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기 때문에 그가 마드리드로 상경하여 많은 작가들 사이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는 사실이 그의 인생에 절대적인 전환의 기회가 된 셈이다. 사실주의에 바탕을 둔 스페인 전통 기법을 터득하였던 것을 시작으로, 이미 그리이스 출신으로 이태리에서 공부한 뒤 스페인에 귀화해 이곳 그림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엘 그레꼬가 있었고, 띤또레또의 그림 경향 역시 마드리드 생활을 통해 알게 되었으니 기초가 탄탄해 질 수밖에 없었다.  1628년 유럽 땅을 전전하며 여러 활동을 한 루벤스가 스페인에 방문한 사실은 우물 안의 벨라스께스에게 중요한 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