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강의] '등장인물'인가, '작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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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MJfzBbFFSJ4 https://www.youtube.com/@Dali-Imagination-Space #Metafiction #메타픽션 #다층적 서술자 #작가의 죽음 #독자 반응 비평 #수용자 이론 #작가의 권위 해체 #현실과 허구의 교차 #원작과 위작의 긴장 #인물의 자기인식 #독자의 공동 창작 #위작 #플롯의 수정과 전환 #기사소설의 패러디 #서사 전통 성찰 #텍스트의 자의식 #자기 검열 #다성성 #경쟁하는 목소리 #해석의 개방성 #의미 갱신 #desengaño #engaño

[DQ] '진실'는 '거짓'이라고 말하는 것에 묻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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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실제의 차이는 어떤가? 상상과 현실의 차이는? 지금 내가 말하고 있는 '어떤 사실'은, 그것이 모두 표현되었는가? 아마, 답은 '그렇지 않다'가 될 것 같다! 그렇다면, 아예 말하지 않을 것인가? 표현하려고 노력한 그 자체를 '의미없다'고 말할 것인가? 돈키호테에게 둘씨네아는 '신'이다. [신곡] 속 베아트리체는 단테의 '신'이다. 그런데, 그 둘씨네아가 돈키호테의 눈 앞에 나타난다면, 그가 이상으로 삼았던, 그가 상상했던, 바로 그 여인, 그 공주, 그 아가씨일까? [돈키호테]에서 '나는 둘씨네아입니다'라고 등장하는 여인은 없다. 그러나 산초가 돈키호테를 속이기 위해 말한 둘씨네아를 보는 순간, 돈키호테는 그녀가 못생긴 시골 처녀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돈키호테가 몬떼시노스 동굴에 들어가서 본 둘씨네아라고 하는 여인도, 엘 또보소 마을 입구에서 산초와 함께 봤던, 입에서 마늘 냄새 지독하게 풍기는 시골 처녀일 뿐이었다. 이렇게 둘씨네아의 '현현', 즉 현실에의 출현은, 돈키호테에게 실망 그 자체다! (사실, 돈키호테도, 산초도, 그리고 독자도 그녀가 둘씨네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미메시스와 이마고 데이를 접목해봤다. 워낙 큰 주제를 돈키호테의 둘씨네아에 적용해봤다. 어울릴 것 같지 않으나, 큰 틀에서는 결코 다르지 않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과 사상, 그리고 문학, 예술은 기독교와 접목되어 중세를 거치고, 근대를 거쳐 현재까지 이어져온다. 시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이 두가지의 접합점이 다르게 표출되어 왔다. (우리는 중세로 들어오는 입구에서 성 아우구스티누스를 만나고, 중세를 벗어나 르네상스와 근대로 넘어오는 시점에 토마스 아퀴나스를 만난다. 시대 변화에 따라 이들의 머릿 속에, 아마도 이 두 단어가 있었을 것이라 상상해본다.) 시골 아가씨지만, 그녀를 통해, 돈키호테는 둘씨네아를 본다. 말하자면, 이름도 모르는 아가씨이고, 산초가 ...

[인문학강의] 둘씨네아의 현현, 그리고 미메시스와 이마고 데이 / Imago De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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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동영상 유튜브 주소:  https://youtu.be/sbZwCL1fdGU

[DQ] '동쪽 끝'에서 생긴 오해: 중세의 서양에서는 한 동안 스리랑카를 고려라고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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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의 내용 중에는 여러 지역이 들어있다.   이는 작가가 책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들은 곳도 있지만, 자신이 직접 발로 걸었던 곳도 있다.   한편, 전혀 알지도 못하는 미지의 세계도 삽입되어 있는데, 특히 독자들이 잘 알지 못하는 지역명은 [돈키호테]와 같은 모험 소설에는 더욱 더 작품의 흥미를 올려주는 요소가 된다.   유럽은 물론,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로 크게 확대된 세계를 호령했던 스페인, 거기에 살았던 호기심 많은 작가 세르반테스는 동양에서 온 여러 지명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그 중, ‘까따이’(Catai)와 ‘깐다야’(Candaya)가 특히 눈에 들어온다.   까따이는 ‘키타이’(Kitai), ‘캐세이’(Cathay)라고 해서, 거란의 일족이 주변 지역과 아랍 사람들의 입을 통하여 서양에 알려지면서, 오랫동안 서양 사람들에게는 ‘중국’을 지칭하는 이름이 되었는데, [돈키호테] 1권에는 까따이가 중국을, 2권에서는 ‘치나’(China)가 중국을 지칭하는 것으로 봐서는, 세르반테스 시대에 와서야, 중국에 대한 나름의 인식이 생긴 것으로 볼 수 있겠다.   한편, 깐다야는 지금의 필리핀의 세부지역이다. 알다시피 필리핀이라는 이름 자체가 스페인의 펠리뻬(Felipe)2세(발견 당시에는 왕자)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펠리삐나’(Felipenas)가 ‘필리삐나’(Filipinas)로 발음하기 쉽게 변형되고, 영어로는 필리핀이 된다.   깐다야는 필리핀의 중앙 부분에 있는 세부(Cebú)섬의 북부에 있다. 마젤란이 처음 도착한 곳이 이 섬인데, 중앙에 세부가 있고, 그 맞은 편에 섬에 막탄(Mactán)이 있다. 마젤란은 막탄에서 원주민과의 전투에서 사망한다. 그런데, [돈키호테] 2권에는 이 깐다야에서 온 여인들이 나온다. 물론, 공작부부가 만든 역할극일 뿐이고, 등장인물들은 거기서 온 사람들이 아니라, 공작의 하인들이다.   여인들은 마법에 걸려 수염...

[하루] 오늘 아침도 우리집에는 수 백개의 다이아몬드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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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쏴! 하고 내리며  지붕에서 물이 넘쳐내리는 때가 있는가하면 안개가 지붕에 닿아 한 방물 한 방물 내리는 때도 있다 처마 물받이에 구멍을 뚫어 굵은 쇠사슬을 땅까지 내렸다 물방울이 사슬을 타고 내려온다 물방울 하나가 한 번에 땅에 떨어질 때보다 매듭과 매듭 사이에 떨어지며 한 번이 아니라 수십 번 빛을 낸다 오늘 아침 우리집에는 수 백 개의 다이아몬드가 떨어졌다

[하루] 새식구를 위한? 새식구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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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식구가 들어왔다! 양평군청에서 집에 도착한 '동물등록카드'에 따르면, 이름은 '보물이', '암컷', '2020년 2월 1일생', '믹스견' 어미가 '동물보호소'에서 낳았다고 한다! 몸이 작고, 날랍고, 그렇다고 묶어 놓기도 그래서.... 이렇게 울타리를 만들어봤다! 풀어놨더니, 집에 온 지, 이틀 째 아침 11시에 나가서, 오후 8시에 집에 왔다! 거의 무방비 상태에서, 우리를 떠난 것으로 생각하고, 거의 포기했는데, 다행이 저녁에 찾아왔다! 이 지역에 생소하고 어린 것인데, 거의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렇게 울타리 만들기로 결정했다! 처음 만드는 것이라, 만들고 부수고, 재차 만들고.... 4일이 걸렸다! 대문 쪽 틈을 줄이기 위해, 철을 대고 용접을 했다! 대문 옆이나 울타리 밑에는 작은 철망을 덧댔다! 비가 계속 내리는 바람에 시간이 더 걸렸고, 수고로움이 더했다! 최대한 묶어놓지 않고, 풀어놓을 예정이다! 만들고 보니,  보물이의 '자유'를 위해서 하는 것인가? 보물이를 '속박'하기 위해서인가? 보물이의 '안전'을 위한 것인가? '자유'라는 것은 무엇인가? 여러가지 생각을 해본다. 하여튼, 처음 만든 울타리를 보며, 나의 보람은 크다!

[DQ] 당신은 현실주의자인가, 이상주의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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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현실주의자인가 이상주의자인가?' 이에 대한 답하기가 쉬울 것 같지만, 한 발짝만 더 들어가면 그리 간단치 않다. 우선 그 개념의 혼동에 빠지게 될 것인데, 어느 '선'까지를 그 구분의 기준으로 잡을까가 문제로 떠오른다. 그러다보면 나오는 결론은 '나는 현실주의자이며, 이상주의자다'라는 말이다. 사실, 지나친 현실주의자에게 비교적 덜한 현실주의자는 이상주의자다. 물론, 지나친 이상주의자 옆에, 보통의 이상주의자는 현실주의자로 보이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돈키호테는 이상주의자'이고, '산초는 현실주의자'라는 표현도 단편적인 비교에서 나온 규정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단지 풍차를 보고, 돈키호테가 거인으로 본 것 만 갖고, 그것을 풍차로 본 산초를 현실주의자, 돈키호테를 이상주의자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돈키호테를 이상주의자로 말하기 보다는, 비현실주의자, 또는 미친자로 봐야 할 것이다. 만일 산초가, 시골 농부이고, 아무런 집안 배경도 없으며, 교육도 받지 않은 산초가, 어느 섬의 총독이 되겠다고 집을 나선다면, 우리는 과연 그를 현실주의자로 볼 수 있을까? 돈키호테를 이상주의자라고 말하지만, 속박된 사람을 풀어주고, 자신이 주장하면 가능했을 섬통치를 산초에게 물려주는 사람이라면, 그는 현실주의자인가 이상주의자인가? [돈키호테]에는 두 인물이 나름의 '표면적 전형'을 갖고 모험길을 나선다. 그 과정에서 이 표면적 인물형은 일관적이지 않고, 오히려 상호관계 속에 변화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하면서, 사람들은 '돈키호테의 산초화', '산초의 돈키호테화'리는 용어를 붙여댄다. 그러나, 한 인간을 하나로 규정할 수 없다. 어느 순간에는 돈키호테가 되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산초가 된다. '나'는 어떤 사람에 비해서는 '돈키호테'이고, 어떤 사람과 비교해서는 ...

[인문학강의] 산초가 이상주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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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동영상 유튜브 주소: https://youtu.be/iqs-yZY1uU4

[연재소설] 귀향(세르반테스를 만난 조선인) / 24.클로드 데루와(Claude Deru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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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클로드 데루와 ” 안녕하세요 . 클로드 데루와입니다 . 선생님으로부터 여러분이 화실을 방문하실 거라고 들었습니다 .” 교황청 전속 화가인 안또니오의 개인 화실은 생각보다 넓었으며 , 주변보다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 , 멀리까지 조망할 수 있었다 . “ 저는 27 살이고 , 프랑스에서 왔습니다 . 안또니오 뗌뻬스따 선생님으로부터 그림 사사를 받기 위해 1612 년에 로마로 유학 와서 , 현재까지 머물고 있습니다 .” 클로드는 시원시원한 외모답게 상대방의 궁금한 점이 뭔지를 알아차리고 , 먼저 자신을 소개했다 . 쓰네나가 일행은 교황청을 방문하여 마사무네의 서한을 제출하고 , 교황청으로부터 구체적인 답이 올 때까지 로마에서 대기하는 중이었다 . 일본에서부터 상상하기 어려운 거리까지 목숨을 걸고 온 임무에 대한 확답을 바로 받지 못해 마음은 불편했지만 , 그렇다고 마냥 수도원 안에만 머물 수는 없었다 . 루이스 신부는 거의 매일 교황청을 드나들면서 요청사항에 대한 답을 확인했고 , 나머지 일행들은 숙소를 중심으로 주변 지역을 관광 삼아 움직였다 . 로마의 여기저기를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내던 중 , 안또니오가 제안한대로 그의 개인 화실을 방문하였던 것이다 . 교황청 접견실 그림 외에 , 쓰네나가를 대상으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제안을 받기 때문이었다 . 그리고 , 그 부탁을 한 사람은 화가의 제자라고 했다 . 사무라이 일행이 로마의 거리를 다니면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기에 , 아마도 제자도 이들을 대상으로 그림을 그리고 싶었고 , 교황청에서 일하는 자신의 선생에게 부탁했으니 , 쓰네나가는 제안을 흔쾌히 받아주었고 , 화실을 방문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 한편 , 석희에게는 무엇보다도 권성빈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했기에 개인적으로 찾아오고 싶었지만 , 어차피 시간도 있고 , 쓰네나가가 갈 것이니 , 일행의 일정에 맞춰 방문할 생각으로 , 급한 마음을 꾹 참고 있다가 드디어 찾아오게 된 것이다 . 화실을 지키고 있던 클로드는 청년이었지만 , 대단히 당당하게 보였다...

[창작시] 향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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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불 올해 잎이 머물던 나뭇가지 끝자리 내년 봄 햇잎이 기억해줄까 늦가을 저녁 한 노인이 낙엽 태운다 

[창작시] 성에, 또는 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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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 또는 성애  이른 아침 새하얗게 피어오른 꽃 뻗친 가지에 올라탄 햇살과의 짧은 수정 이내 흘러내리는 눈물 

[인문학강의] 정의? 산적들에게 물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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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동영상 유튜브 주소:  https://youtu.be/EV-BEWRh0AI

[DQ]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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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당신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게 '정의'다! 그렇다, 사람의 숫자 만큼, 수 많은 '정의' 속에 살아간다! 각자 나름의 설명과 속사정이 있는 것이니, 각자는 정의롭다! 그런데, 이것을 하나로 묶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사람은 '사회' 속에 살아가기 때문이다. '나'에게서 한 발짝 만 벗어나도 '상충'되는 사람 관계에서, 공통의 '정의'를 규정하는 것이란 불가능해 보인다! 로마신화에서 정의의 신, '후스띠시아'(Justicia)(그리스 신화에서는 '디케'에 해당)에게서는 특징적인 몇 가지가 발견된다. 우선 눈을 가렸다! 한 손에는 저울을 들었다! 또 한 손에는 칼을 들었다! 눈을 가린 채 저울의 균형을 맞춘다는 것은 어떤 것이며, 어떤 심리 상태일까? 남의 일을 판단해주는 일이고, 나의 판단이 나에게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이라면 '대충' 판단을 내릴 수도 있겠다! 신인 '후스띠시아'의 판결에 감히 인간이 반기를 들기 어렵다! 그런데, 이 정의의 신이 다른 손에 들고 있는 칼을 눈여겨 보게 된다. 이게 문제다! 눈을 가리고, 균형을 맞추고, 판결을 내린다. 그리고 칼로 엄한 벌을 가한다? "이것은 '정의의 칼'이니, 죄인은 이 칼을 받아라?" 그렇지 않다! 눈가리고, 균형을 맞추고, 판결을 내린 결과에 대한 책임은 바로, '내가 칼을 맞는가?'를 결정한다! 신화는 '타인을 죽이라!'는 말보다는 '나를 죽인다!'라는 교훈을 준다. 돈키호테와 산초가 바르셀로나에 도착하기 전, 험한 산을 넘는다. 아마도 지금의 몬세랏(Montserrat) 산으로 생각하면 될 듯하다. 거기서 무시무시한 산적떼를 만난다. 둘은 40명의 산적들로부터 모든 것을 빼앗기지만, 이내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