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강의] '등장인물'인가, '작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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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어둠 속에서 그의 그림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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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강의] '나'를 둘러 싼 사람들의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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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K3Vovf8m7Nk #돈키호테 #시골노인 #알론소 끼하노 #기사 #나가다 #머물다 #살다 #존재 #삶의 의미 #거인 #풍차 #광인 #귀향 #집 #싸움 터 #이상 #둘씨네아 #산초 #이상주의자 #현실주의자 #양립 #혼합 #경계 #하나 #살바도르 달리 #투우 #결투 #나와 그들 #투쟁 #관객 #투우장 #Picador #Banderillero #Matador #Toro #Torero #존재 #생명체 #실존 #투우사 #황소 #투쟁관계 #선과 악 #적과 동지 #동행자 #동행 #산초 #공작부부 #가족 #친구들 #광기 #우신예찬 #광기예찬 #문학강의 #세르반테스 #Locura #Salvador Dalí #Don Quijote #Cervantes #나 #열정 #갈등 #상대 #마드리드 #바르셀로나여행 #톨레도 #세비야 #그라나다 #코르도바 #산티아고순례길 #유럽여행 #스페인여행 #스페인어 #스페인와인 #스페인 #성격

[문예] 20세기를 선도한 바르셀로나 예술: 후안 미로(Juan Miró),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 그리고 후안 그리스(Juan G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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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까소는 그의 주 활동 무대가 파리였기 때문에 프랑스인으로 오인되기도 하지만, 호안 미로(Joan Miro, Juan Miro, 1893~1983)는 바르셀로나 출신으로 ‘진짜배기’ 스페인 사람이다. 그는 당시 스페인에서도 프랑스의 바람이 가장 거세게 불던 바르셀로나에서 미술을 시작한다. 초현실주의라고 불리는 바람은 미로를 독특한 기법의 소유자로 만들었고, 가우디의 독특한 건축은 그의 초현실주의적인 감수성을 더욱 자극하였다. 스페인의 전통과 가장 현대적인 기법이 호안 미로에 의해 혼합되고 완성된다. (El Carnaval del Arlequin, Joan Miro) 호안 미로는 자연의 개념을 상징하는 기호들을 일정한 틀로 만들어 작품에 구현하고 있어서, 그의 그림에서는 추상성과 함께 또 다른 의미의 통일과 균형을 보게 된다. 그의 미술은 달리나 피까소의 미술과 거의 유사한 관점에서 시작되고 있으나 표현에 있어서는 상이하며, 특히 자연, 바르셀로나의 풍경과 바다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한편, 미로의 그림에는 움직임에 더불어 기하학적인 균형 감각이 잘 드러나 있기도 하다. 마치 조각과도 같은 비례와 대칭이 두드러지며 그렇기에 그의 작품은 그림보다는 건축이나 구조물에 연결할 수 있는 것이어서, 가우디를 생각나게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미로는 파리에 가서 조이스나 헤밍웨이 및 피까소 등과 만났으며, 그것이 그를 모더니즘계, 아방가르드 작가의 계열로 확고하게 자리 잡게 하는 계기가 된다. 그의 그림은 직선보다는 곡선과 직선의 교묘한 조화가 특징적이며, 이미지의 상징성이 강하다. 원색을 많이 쓰고 있는데, 그가 주로 그린 대상은 여인이며 거기에 하늘과 인간 세상의 중개자로 새를 많이 그리고 있다. 호안 미로의 그림에서 별은 하늘나라와 상상의 세계를 상징하고 있기도 하다. 그는 반프랑꼬주의자였으며, 1970년대 초에는 바르셀로나에 호안 미로 재단을 설립해 작품을 전시하였다. (Obras de Joan Miro) 호안 미로는 피까소, 달리와 더불어 현대 바르셀...

[문예] 20세기를 선도한 바르셀로나 예술: 피카소(Pablo Picasso)(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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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색 시대 다음으로 피까소는 유랑 극단에 관심을 가진다. 광대 혹은 원숭이 같은 동물의 모습에서 먹고살기 위해 사회라는 곳에 편입하여 떠돌 수밖에 없는 고단한 삶을 포착하였으며, 이는 프랑스 생활에 대한 그의 심경을 대변한다. 물론 여러 가지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 유랑 극단이라는 소재이지만, 그중에서도 한곳에 머물지 못하는 떠돌이 신세가 작가 스스로의 삶과 무척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공중에서 묘기를 부리는 소녀」, 「광대」, 「곡예사 가족」 등이 이 주제에 해당된다. 이 시기는 그림을 이루는 주 색깔이 청색에서 장미색으로 변모하고 있으니, 바로 ‘장미의 시기’이다. 이 무렵, 피까소는 자신의 중요한 미술적 전환을 알리는 「아비뇽의 여인들」(1907)을 발표하는데, 여기서는 엘 그레꼬의 그림 양식과 당시 아프리카에 가지고 있던 관심이 가미되어, 여인이 아프리카의 가면을 쓰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피까소의 아프리카에 대한 관심은 고갱이 그랬던 것처럼 그즈음의 유럽이 당면한 복잡하고 잔인한 인간 사회에 대한 거부반응이었으며, 좀 더 단순하고 원시적인 것을 향한 갈구에서 비롯되었다. 「아비뇽의 여인들」은 그의 친구 막스 자코브가 바르셀로나 사창가의 이름을 붙여 줌에 따라 제목이 결정된 것이다. 즉, 그림 속의 여인들은 매춘부이다. 이어 피까소는 프랑스에 있는 동안 세잔의 그림에 영향을 받는 등, 스페인 전통과 아프리카 미술 및 색의 새로운 발견이 어우러져 그만의 독특한 그림을 만들어 낸다. (Les Demoiselles d'Avignon ) 1915년 피까소가 사랑하는 에바가 죽었고, 같은 해에 내놓은 「익살 광대」는 그 슬픔을 내포하고 있다. 그의 입체주의는 꿈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는 듯한 초현실주의 경향과 잘 어울릴 수 있었다. 즉 사물의 입체적인 시각은 마치 상상에 의한, 사물의 다른 면을 보려는 시각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현실을 바라보는 전통적 기법에 대한 부인은 입체주의와 초현실주의가 피까소에 와서 결합한 이유이다. 그의 ...

[문예] 20세기를 선도한 바르셀로나 예술: 피카소(Pablo Picass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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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하면 생각나는 또 다른 주요 인물로는 피까소(1881~1973)가 있다. 미래에 스페인은 물론 세계적으로 유명한 피까소가 될 화가가 스페인 남부 해안가 말라가(Malaga)에서 태어나 아버지를 따라서 바르셀로나에 정착한 것은 1895년의 일이다. 피까소는 스페인에서도 가장 진보적이며 파리에 가까운 이 현대적인 도시에 도착함으로써 자신의 창작에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다. 피까소가 파리에 발을 디딘 것은 1901년이었으며, 1904년에 다시 바르셀로나로 돌아와 창작 생활을 한 것이 바로 ‘청색 시대’(Epoca Azul)라고 일컬어지는 시기이다. 파리에서 돌아온 그의 눈에 비친 바르셀로나는 파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난했으며, 스페인에 대한 생각이 감상에서 현실로 돌아옴에 따라 그림 속에 노동자와 하층민의 생활이 등장하면서, 청색 시대의 작품은 작가의 암울한 현실 인식을 나타내게 된다. 피까소는 이어 1904년에 프랑스에 간 다음 그곳에 완전히 정착하여, 거의 모든 생을 프랑스에서 보내면서 창작을 했다.                                                 (Las Obras de la Epoca Azul de Picasso) 그가 스페인에 잠깐씩 들어왔던 것은 방문 형식이었고, 그 배경에는 프랑꼬(Franco)의 독재정치에 저항하려는 의도도 들어 있기는 했으나, 스페인의 창작 조건이 그의 화가 생활에 도움을 주었던 것도 한 이유였다. 피까소는 살아생전에 대단한 성공을 거둔 몇 안되는 작가 중의 하나이다. 그가 그린 그림은 그대로 전시되어 경매에 붙여지고 막대한 액수로 판매되었으니, 돈과 명예에서 남보다 뒤지지 않았다. 애정 행각도 대단했으며 천수를 누리는 복도 얻었으니, 금세기 보기 드문 예술가라고 칭할 수 있겠다...

[인문학강의] 가족과 친구들이 돈키호테를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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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 20세기를 선도한 바르셀로나 예술(1): 가우디(Anonio Gau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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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가 보수적이고, 그 배경에 스페인의 16~17세기를 지칭하는 황금세기(Siglo de Oro)와 20세기 이전의 고전적 전통이 있다면, 스페인 제2의 도시 바르셀로나는 20세기의 도시라고 말할 수 있다. 항구도시이며 외부와의 교류가 많았던 바르셀로나는 진보적이고 현대적인 도시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 준 사람들 중에는 위대한 건축가와 화가가 많다. 마드리드가 쁘라도 미술관(Museo del Prado)을 중심으로 엘 그레꼬(El Greco), 루벤스(Rubens), 벨라스께스(Velazquez), 고야(Goya)가 있어 풍요롭듯이, 안또니 가우디(Antonio Gaudi)와 빠블로 피까소(Pablo Picasso),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호안 미로(조안 미로, Joan Miro) 등의 인물은 바르셀로나를 가장 현대적이고 세계적인 도시로 만드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Museo de Picasso, Barcelona) 살바도르 달리 등의 여러 작품들이 마드리드의 레이나 소피아(Reina Sofia) 현대미술관에 전시되어 있긴 하지만, 이들 작가의 작품에 들어 있는 배경은 바르셀로나였으며, 바르셀로나에도 그들의 작품이 많이 보관되어 있다. 물론 가우디의 작품은 시내 이곳저곳에 웅장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어서, 마치 시내 전체가 그의 작품인 양 느끼게 한다. (Museo de Joan Miro, Barcelona) 가우디(Gaudi, 1852~1926)가 없는 바르셀로나는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그는 이 도시와 스페인을, 그리고 스페인 예술과 건축의 전통을 세계에 알린 제1의 공신이다. 특히 가우디가 만들었고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는 ‘성가족 성당’(La Sagrada Familia)은 바르셀로나에 대한 포스터 가운데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도시를 대표한다고 말할 수 있다. 안또니 가우디의 건축양식은 고딕에 이슬람 양식이 곁들여지며, 거기에 작가의 창조 정신이 가미된다. 보통 가우디를 르네상스 양식과 로마네스크, ...

[문예] 예술로 빚은 도시, 바르셀로나(Barcelona)(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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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경기도가 둘러싸고 있고 마드리드를 꼬무니닷 데 마드리드가 포함하고 있듯이, 바르셀로나는 까딸루냐의 중심지이며 다른 대도시들이 그렇듯, 이 스페인 제2의 도시는 까딸루냐 지역과 분리되어 있기도 하다. 따라서 까딸루냐는 바르셀로나를 기반으로 출발했지만 행정구역상 바르셀로나를 제외한 인근 지역을 말한다. 까딸루냐는 산업이 발달하였고 인구도 많은 편이나, 역시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보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까딸루냐는 스페인 산업의 중요 부분을 차지하며, 긴 해안은 ‘헤로나’(Gerona, 까딸란으로는 ‘지로나’)를 중심으로 하는 북쪽의 ‘꼬스따 브라바’(Costa Brava, 거센 해안)와 ‘따라고나’(Tarragona)를 중심으로 하는 남쪽의 ‘꼬스따 도라다’(Costa Dorada, 금빛 해안)로 나뉘어 해안선을 따라 발전한 휴양지가 각광 받고 있다. (로마유적, Ruinas Romanas, Tarragona) 주요 도시로는 헤로나와 ‘레이다’(Lleida)가 있으며, 따라고나는 로마 시대 까딸루냐 지역 최대의 도시였다. 로마인들이 사용했던 원형극장과 연극장 등 여러 시설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로마 시대의 건축물에 아직도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이곳은 시간이 멈춰진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따라고나는 철저한 도시계획에 따라 형성되었기 때문에, 로마 문화를 한눈에 엿볼 수 있다. 특히 4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뽄뜨 델 디아블레’(Pont del Diable, 악마의 다리)라고 하는 다리는 세고비아의 로마 수로와 유사한 모습을 가지며, 기원전 200년경에 지어져 2,2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거의 완벽하게 남아 있다. (악마의 다리, Pont del Diable, Tarragona) 이 밖에도 까딸루냐에는 고급문화 휴양지이며 별장촌이 많은 ‘시체스’와 살바도르 달리가 살았던 ‘피게레스’ 등이 있다.  #바르셀로나 #까딸루냐 #스페인여행 #스페인어 #스페인 #스페인역사 #스페인음식 #콜럼버스 #독립운동 #마드리드 #스페인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