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강의] '등장인물'인가, '작가'인가?

이미지
https://youtu.be/MJfzBbFFSJ4 https://www.youtube.com/@Dali-Imagination-Space #Metafiction #메타픽션 #다층적 서술자 #작가의 죽음 #독자 반응 비평 #수용자 이론 #작가의 권위 해체 #현실과 허구의 교차 #원작과 위작의 긴장 #인물의 자기인식 #독자의 공동 창작 #위작 #플롯의 수정과 전환 #기사소설의 패러디 #서사 전통 성찰 #텍스트의 자의식 #자기 검열 #다성성 #경쟁하는 목소리 #해석의 개방성 #의미 갱신 #desengaño #engaño

[DQ] '역사서'로서의 [돈키호테] / La España de [Don Quijote]

이미지
스페인에서 기독교가 이슬람 세력을 물리치는 과정을 '국토회복전', 즉 '레꽁끼스따'라고 한다. 원래의 자기 영토를 되찾는다는 이 말은 사실, 매우 정치적이다. 711년 히르랄따르(지브롤터)를 통해 들어온 이슬람 세력은 1492년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왕의 합작에 의해 그라나다에서 추방당했다. 거의 800년 동안의 시간은 단순한 종교적 대결로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왕국과 왕국 간의 대결과 정복전쟁, 그리고 통일과 중앙집권적 통치의 과정으로 봐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국토회복전'이라고 하면, 마치 기독교가 이슬람교를 물리친 것으로 단순화할 수 있겠으나, 실상은 기독교 왕국 간에도, 그리고 이슬람 왕국 간에도 서로 반목과 대결은 늘 있었다. 결국 국토회복전이 아니라, 왕국들이 하나의 근대국가로, 그리고 중앙집권적 통일 국가로 가는 과정에, 스페인 땅에서는 기독교와 이슬람교 간의 대결 구도로 단순하게 설명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일반 사람들 사이에는 기독교를 믿는 자와 이슬람교를 믿는 자, 그리고 유대교인과 종교가 없는 사람들이 함께 살았다. 가족 안에도 종교가 달랐을 것이니, 진영을 나누는 정도가 될 수 없다. 1492년 그라나다를 함락한 사건은 동시에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한 것과, 스페인어 문법서를 안또니오 네브리하가 낸 사건이 동시에 벌어졌다. 그리고 100년, [돈키호테]가 나올 때까지의 시간은 통일왕국의 왕권이 강화되고, 제국을 건설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 '하나'를 만드는 과정에, 기독교가 중심축이 되었으니, 스페인 땅에서는 유대인 추방, 이슬람교인 추방, 그리고 이제는 이런 종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에 대한 불신과 추방이 있었다. 세르반테스와 아주 가깝게, 1609년에 펠리뻬 3세가 개종한 사람들, 즉 모르스꼬들을 추방했으며, 이는 1613년까지 지속적으로 진행된다. [돈키호테]는 이런 역사적 흔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특히, 산초의 마을 친구인 리꼬떼...

[인문학강의] 산초의 마을 친구, 리꼬떼가 말해주는 그 때의 스페인

이미지
 강의 동영상 유튜브 주소:  https://youtu.be/a8_StNfKyoU

[문예] 까를로스 1세와 펠리뻬 2세 시대의 영토

이미지
까를로스 1세와 펠리뻬 2세 시대의 영토 합스부르크(Habsburgo)의 프리드리히 3세의 아들 막시밀리안(Maximiliano I de Habsburgo)과 프랑스 부르고뉴 공국 샤를 대공의 딸 마리(María de Borgoña)는 1477년 결혼하여 아들 필리프(펠리뻬)를 낳았다. 당시는 강대국과 강대국, 강대국과 약소국 간의 정략결혼이 왕실 결혼의 행태였다.  한편 이베리아 반도에서는 아랍 세력을 물리치면서 강력한 기독교 국가가 확립되어 영토와 세력을 키워 왔으니, 통일의 과정에서 아라곤(Aragón) 왕국의 페르난도(Fernando)와 까스띠야(Castilla) 왕국의 이사벨(Isabel)이 결혼하고, 거기서 후아나(Juana)라는 딸이 태어난다.                        (María de Borgoña y Maximiliano de Habsburgo)                                                                                         (Isabel y Fernando) 국토 통일과 함께 강력해진 스페인의 딸 후아나(이후 '미친' 후아나 1세)에게 강국 스페인을 경계하고 있던 합스부르크 왕가가 화친의 의미로 잘생긴 필리프(이후 '미남' 펠리뻬 1세)를 남편감으로 보내니, 1496년 결혼이 성립되었다.       ...

[DQ] 삶은 '소명'이나, '의미'가 아니라, '상상하는 행위', 그 자체다!

이미지
우리는 '삶'을 말할 때, 삶의 '사명'이나 '소명', 그리고 '의미'를 말하곤 한다. 아주 '어른스러운' '의문'이고, '답'이다. [어린왕자]의 맨 끝에, '한 마리 양이 한 송이 장미꽃을 먹었느냐, 먹지 않았느냐' 정도로 좀 쉽게 생각하면 안될까? 물론, 이 양과 장미에 대한 의문은 어린왕자에게 '천지가 온통 바뀌게 될 일'이지만 말이다. 무슨 말인가? 그렇다! '상상'에 대한 이야기다! [어린왕자]가 주는 중요한 메시지는 바로, 이 '상상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문학에 대해서는 참으로 많은 '정의'와 '설명'이 있다. 그런데, 문학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의 하나는 바로, 이 상상의 발휘이면서, 그 상상이 다른 사람의 상상을 자극하는 일이다. 한편, 문학의 이런 기능을 가장 잘 수행하는 핵심적인 요소가 있다. 바로, '애매모호성'이다! "애매모호?!" 우리가 말하는 '어른들'들로부터는 비난받을 자세다! "자네의 꿈은 무언가?"라는 질문을 우리 사회는 자주 한다. 거기에, 우리는 어떤 특정한 멋진 직업을 말해야 '잘 자란 청년'으로 취급받는다. 만일, "행복한 삶이요!"라는 답을 내는 청년이 있다면, '부정의 딱지'를 맞게 된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비현실적인 존재', '무능한 존재', '꿈이 없는 인간'으로 전락된다. [돈키호테]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애매모호성의 안개가 끼어있다. 그래서, 돈키호테를 그렇게 비난해왔는 지 모르겠다. (물론, 요즘은 돈키호테를 좋게 평가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문학, 또는 한 편의 '시'가 갖춰야 할 요건이 애매모호성이라면, 그 작품은 수...

[인문학강의] 애매모호성의 미학 / La ambigüedad

이미지
강의 동영상 유튜브 주소: https://youtu.be/gBZRO9edbrA

[연재소설] 귀향(세르반테스를 만난 조선인) / 26.위작(El Quijote de Avellaneda)

이미지
26.위작   이태리 방문을 마치고, 다시 스페인 땅을 밟은 일행은 지중해 항해의 출발지였던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거기서는 갔던 길의 역순으로 도시들을 거쳤으며, 마드리드에 도착해서는 다시 수도원에 머물게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몬세랏 산을 통과하지 않았는데, 갈 때보다는 일정을 단순하게 하여, 속도를 내기 위해서였다. 앞으로 갈 길도 멀지만, 빈손으로 돌아갈 공산이 크다는 심적 부담이, 이들의 발길을 재촉했다. 바티칸에서 교황을 알현하고, 일본 내의 기독교 탄압과 그에 대한 교황청의 적극적인 대책을 요청했으나,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답은 받지 못 했다. 오히려, 스페인 왕에게 그 지원 여부를 물어보라는 정도의 답을 받았을 뿐이었으니, 멀고 긴 거리를 온 사람들에게는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사실 스페인 왕의 입김은 교황청에 강하게 미쳤다. 그렇기에 교황은 스페인 왕의 눈치를 보는 것도 있었다. 그렇다고 교황이 주저하는 것을, 스페인 왕이라고 선제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결정할 입장도 아니었다. 게다가 펠리뻬 2세의 집권기에는 스페인 왕이 내리는 결정은매우 절대적인 힘을 가져서, 교황청에서도 스페인 왕실이 내린 사항에대해서는 그대로 따랐지만, 그의 아들 펠리뻬 3세 시대에는, 오히려 교황과 스페인 왕과의 관계가 그리 매끄럽지 못했다. 권력이 이동하는 전환기에 서로 조심하고, 견제하는 정도였다. 마드리드에 도착하면서, 루이스 신부는 왕실과 접촉하고, 로마 방문의 결과와 함께 스페인 왕의 지원 및 멕시코와 필리핀 간의 은 교역 독점권을 없애고, 일본이 그 무역에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을 다시 한 번 더 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왕실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변했다는 사실을루이스 신부와 쓰네나가는 감지하고 있었다. 그것은 사절단이 떠난 후, 일본 내 급변하게 진행되고 있는 권력 이동을 반영하는 것이었고, 스페인 왕실의 여력도 매우 약해졌다는 뜻이기도 했다. “석희씨, 건물 밖에 호세라는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찾아온 사람이 호세라는 소리에,...

[스페인 와인] 포르투갈의 와인

이미지
포르투갈의 와인 스페인과 함께 이베리아반도를 차지하고 있는 포르투갈은, 그래서 스페인과 깊은 역사적 관계를 갖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남부 프랑스와 스페인 북부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오늘에 이어진다. 언어도 오히려 스페인 서북부의 갈리시아어와 유사하며, 그것은 다시 프로방스 등 프랑스 남부의 언어 및 습관과 이어졌으니, 특히 기독교인들이 아랍 세계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에서 스페인 서북부 지역이 특히 교류가 잦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두오로(두에로) 강과 강 유역 강유역의 포도밭 와인을 볼 때, 이 나라 와인은 주로 두오로(Duoro) 강을 중심 젓줄로 하여 생산되며, 나름대로의 독특한 포도품종을 통해 독특한 와인이 만들어지고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포르투갈에도 ' 바이라다' (Bairrada)란 일종의 까바, 또는 샴페인을 제조하며, 화이트와인으로는 스페인 갈리시아의 리아스 바이사스에서 만날 수 있는 청포도품종인 알바리뇨(Alvarinho)가 사용되어 비노 베르데(Vinho Verde)가 대표적 와인으로 꼽힌다.  물론 비노 베르데는 꼭 청포도만을 쓰는 것은 아니어서 가끔은 적포도도 이용되지만, 대부분 청포도를 갖고 만든다. 와인의 이름에도 나타나고 있지만, 이 와인은 스페인의 끄리안사보다도 더 젊은 편이며, 그래서 산성 기운이 많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오뽀르또(Oporto) 포도밭 수확장면 스페인의 포티파이트와인으로서 가장 잘 알려진 것이 '세리'라면, 오랜 옛날부터 세계인들에게 알려진 것이 ' 뽀르또' (Porto)이다.  포르투갈이란 나라보다 오히려 '뽀르또'란 것에 익숙해져 있는 한국 사람들도 찾아볼 수 있는데, 오래 전부터 미군부대를 통해 이것이 외부로 유출되면서 소주를 즐기던 한국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의 와인으로 각인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뽀르또(포트, Porto) 와인 '뽀르또'(Porto)는 'Vinho de Porto'라고 부르며 이것은 '오뽀르또...

[DQ][인문학강의] 서양의 '개인'과 '개인주의' / Individuo e Individualismo

이미지
강의 동영상 유튜브 주소: https://youtu.be/uAQXpOhrjk8 우리에게 '개인주의'라는 말은 '부정적인 의미'가 부여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이 'Individuo'(개인)에서 나온 'Individualismo'를 우리말로 해석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즉, '개인주의'는 '자기중심주의', 말하자면 'Egoismo'와 다르다는 사실이다. 새삼, '개인의 탄생'이 르네상스로부터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개인'은 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과의 관계 속에서의 '개인'은 분명, 르네상스적 기운을 타고 강조되었다는 점은 인정할 만하다. 말하자면,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발견되는 것이 '개인'인 것은 분명하다. 다시 신과 인간의 관계를 연상한다면, 인간은 신으로부터 멀리 나왔다는 것인데, 그것은 '자유의지'라는 단어로 대변된다. 기독교적 세계관 속에 오랫동안 머물렀던 서구사회에 고대 그리스 및 로마의 전통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반기독교적인 색채를 띠면서, 동시에 신과 인간의 관계가 다르게 다가온다. 신과 대항했던 인간. 신을 이겼던 인간. 신과 섞였던 인간은, 창조주 신과 그 피조물인 인간의 관계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말하자면, 르네상스의 사고는 피조물로서의 인간이 아닌, 신과 대항할 수 있는 인간, 즉 '개인'이 탄생한 것이다. 중세와 근대는 이렇게 구분된다. [돈키호테]를 보면, '개인'이 있다. 돈키호테가 그렇고, 산초가 그렇다. 이들은 운명론이 아닌, 자유의지로 세상을 편력한다. 세상을 바꾸겠다고 나선다. 혈통으로 내려오던 가치의 세계에서, 이들은 자신의 의지와 덕이 더 중요한 시대임을 말하고 있다. '개인'은 이기주의자가 아니라, 이렇게 자기의 의지로 ...

[하루] 여름을 닫다!

이미지
 6월 초에 열었던 수영장 덮개를 닫았다. 그러니까, 100여일 이상 하늘을 바라보고, 비를 담고, 많은 이야기를 담았다. 강아지 식구 중 하나는 무서워 아예 멀리 떨어져 다녔고, 또 하나는 경계하는 모습으로, 그리고 신참은 호기심으로 가까이 다가서기도 했다. 아들 친구들이 싱크로나이즈를 한다고 했고, 가득 채워졌던 물은 거의 20퍼센트(?)가 밖으로 튀어나갔다. 물속에 온 몸을 넣고, 짧지만 나만의 세계를 맛보기도 했다. 이번 여름은 유난히 비가 많았다! '참으로' 많았다! 수영장이 넘칠 듯했기에, 일부러 물을 빼기도 했다. 태풍이 있을 때는 여러 모양의 낙엽들이 물 위를 수놓기도 했다. 가끔 개구리가 여유로운 수영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여름의 많은 것들을 담아낸..... 소중한 우리의 놀이터! 이 위에 내려앉았던 하얀 눈,  역시 멋진 풍경을 만들어내곤 했다! 이번 겨울엔,  하얀 눈 뭉쳐, 작은 눈사람이라고 만들어볼까?

[인문학강의] 야고보(산티아고), 사도에서 기사로 / Santiago Matamoros

이미지
강의 동영상 유튜브 주소:  https://youtu.be/SKJUau42dcA

[DQ] 산티아고, 닫아라, 스페인?

이미지
스페인의 수호성자는 ‘산띠아고’다. 그렇다, ‘산티아고 순례길’(Camino de Santiago)의 주인공.  그런데 이 인물을 ‘산띠아고 마따모로스’(Santiago Matamoros)라고 부른다. (여기서 ‘모로’(moro)를 우리는 ‘무어인’이라고 했고, 스페인 땅에 들어온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세력, 즉 아랍계의 ‘이슬람인’을 의미한다. 한편, 옛 로마 때부터 유럽에서 써오던 ‘사라센’이라는 용어와 혼용되기도 하는데, ‘모로’는 스페인에 들어온 이슬람인을, 사라센은 그보다 더 확대된 의미로 보면 될 것 같다.) ‘마따’라고 하면, ‘죽인다’(matar)라는 동사에서 온 것이니, ‘마따모로스’는 ‘이슬람인을 죽이는 성인’, 또는 ‘기사’ 쯤으로 해석된다. 말하자면, 교회 역사 속의 ‘사도’가 ‘기사’가 된 것이다.그것도 이슬람 세력을 무찌르는 기사! 스페인에서 ‘레꽁끼스따’(Reconquista) 즉, ‘국토회복운동’, 또는 ‘국토회복전쟁’은 참으로 길었다. 711년 지브롤터(Gibraltar)를 통해 들어온 이슬람 세력과의 긴 대결의 시간. 초기에는 이민족과의 저항이고 전투였으나, 점차 이슬람교와 기독교 간의 대결 구도로 구체화된다. 그라나다에서 이슬람 왕조를 쫒아낸 것은, 스페인의 통일을 의미했다.   이 상황에서 야고보, 즉 야곱(세계 여기저기서 쓰이는 Jacobo, Jacob, Iago, Llago, Yago, Jaime, Tiago, Diego, Santiago 등은 모두 이 인물을 지칭한다.)이 대두된다. 즉, 성서(사도행전 12장2절) 속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러 간 사도가 간 곳은 서쪽 끝 이베리아 반도, 즉 스페인이라고 생각되며, 그의 무덤이 발견되었다는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Santiago deCompostela) 쯤 돼야하는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즉, 좀 더 가면 지금도 ‘피니스떼라’(Finisterre(a),Fisterra, ‘땅끝’의 뜻으로, 스페인 서북부의 대서양과 면한 지역)가 있는가하면, 이슬람...

[인문학강의] 세르반테스의 동양에 대한 지식과 그 혼합 / Oriente en [Don Quijote]

이미지
강의 동영상 유튜브 주소:  https://youtu.be/oSiGqhGoDz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