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강의] '등장인물'인가, '작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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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MJfzBbFFSJ4 https://www.youtube.com/@Dali-Imagination-Space #Metafiction #메타픽션 #다층적 서술자 #작가의 죽음 #독자 반응 비평 #수용자 이론 #작가의 권위 해체 #현실과 허구의 교차 #원작과 위작의 긴장 #인물의 자기인식 #독자의 공동 창작 #위작 #플롯의 수정과 전환 #기사소설의 패러디 #서사 전통 성찰 #텍스트의 자의식 #자기 검열 #다성성 #경쟁하는 목소리 #해석의 개방성 #의미 갱신 #desengaño #engaño

[하루] '믹스견'이 아니고, '딩고'예요! (보물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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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uBTj6uHBsDY #딩고 #믹스견 #반려견 #강아지 #강아지 키우기 #반려동물등록증 #호주 #오스트레일리아 #사막 #고원지대 #야생 #늑대

[문예] 스페인에서 연애하기, 산 후안의 밤 (Noche de San Ju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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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닷가 마을의 전설과 미신 바닷가 마을에서 으레 그렇듯이, 많은 전설과 미신이 이비사(Ibiza)와 포르멘떼라(Formentera)에도 예외 없이 전해진다. 왼쪽 귀가 윙윙거리거나 가려우면 남이 자기에 대해서 나쁜 비방을 늘어놓고 있다고 믿으며, 오른쪽 귀가 그러면 좋은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바닷가 불놀이, Noche de San Juan) 여인이 애인을 구하기 위해서 준비하는 방법으로는, 산 후안 성자(San Juan)의 날 전날 밤에 초나 납을 녹여 물이 가득 든 용기에 부으면서 거기에 콩을 세 개 집어넣고 침대 밑에 넣어 두는 미신적 전통이 있다.                   (산 후안의 날 밤 축제, Noche de San Juan) 식탁에 빵을 아래와 위가 다르게 놓는다거나 양말을 거꾸로 매달아 놓는 경우, 그리고 배에서 빗질하는 일이 있으면 나쁜 징조이며, 비바람과 태풍이 몰려오게 된다고 믿는다. 가는 길을 부엉이가 가로지르고 날아간다면 불길한 징조로 생각된다. 탁자 위에 가위의 날을 벌린 채 놓는 경우에는 누군가와 싸우게 될 것이며, 고양이를 죽이면 7년간은 재수 없는 것으로 믿는다. 밤에 청소하거나 꼽추를 배에 태우는 경우, 새해가 금요일로 시작되거나 식탁에 앉을 때, 식탁 위의 소금과 기름을 쏟는 경우에는 불길한 징조로 본다. 한편 복을 비는 마음에서 산 후안 성자의 날에 포도주를 뿌리는 일, 그날 아침에 솟는 해를 보는 일은 행운을 주는 것으로 믿는다. 우리의 정서와 상당히 맞아떨어지는 미신이기도 하다. 만일 손바닥이 가렵다면 그것은 그 사람에게 돈이나 행운이 들어올 징조이며, 모든 성자의 날 밤에 온갖 과일과 잣 씨 등으로 상을 차려 놓는 일은 돌아가신 선조들의 영혼을 달래어 산 사람들의 복을 비는...

[문예] 평야에 솟은 언덕, 바람과 풍차, 그리고 돈키호테 (Consueg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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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과 마음을 씻어 주는 바람의 세상, 꼰수에그라 두 눈을 감고 바람을 느껴 본다. 저 멀리, 아주 멀리 펼쳐진 들판을 달려온 강력한 바람이 황홀할 만큼 모든 세포를 어루만진다. 다시 귀에 집중하면 그저 바람 소리뿐, 낮이나 밤이나 적막한 이곳은 온통 바람이다. 스페인 남쪽으로 가는 도중 찾게 된 ‘꼰수에그라’란 지역은 마드리드에서 똘레도 방향으로 내려와 벌판을 지나면서 저기 안달루시아로 향하는 지점에 위치한다. 넓은 평야의 중간에 낯설게 올라온 언덕 그 밑에 작은 도시가 만들어지고, 언덕 위에는 가장 큰 집이었을 성과 함께 풍차들이 자리 잡고 있다. 들판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농사, 특히 밀은 당연히 여기 바람 많은 언덕 위의 풍차에서 가공했을 것이다. 마을은 작지만 한창일 때는 경제적으로 힘을 발휘했으리란 생각이 든다.                                            (꼰수에그라의 풍차들, Molinos de Consuegra) 『돈끼호떼』의 내용 가운데 풍차 이야기는 절대 빼놓을 수 없다. 사실 풍차가 곡창 지역의 방앗간이라는 점에서 주변의 여러 곳에 산재해 있었고, 그중 일부가 남아 현재는 관광지가 되었음은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꼰수에그라의 풍차가 세르반떼스가 묘사한 그 풍차, 돈끼호떼가 무모하게 달려들고 넘어지는 바로 그 자리는 아닐 수 있겠으나, 작품 속의 여러 가지를 고려하건대 여기 꼰수에그라 또는 엘 또보소의 풍차가 아니겠는가 하고 추측한다. (풍차의 날개, Aspa de Molino) 돈끼호떼는 억지 춘향 격으로 기사 작위를 받은 이후, 기사로서 갖춰야 한다는 조건들을 준비하기 위해 자신의 마을로 다시 돌아간다. 한편, 동네의 순수한 사람, 산초를 설득해 마을을 나와서 처음으로 마주친 풍차와의 대결 장면은 ...

[문예] 성과 수도원의 땅, 까스띠야 이 레온(Castilla y Leó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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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과 수도원, 국토회복전(Reconquista)의 땅, 까스띠야 이 레온 (Castilla y Leon) 스페인 내륙 쪽으로 가장 볼거리가 많고 가장 역동적인 지역이 있다면 ‘까스띠야 이 레온’이 품고 있는 도시들이다. 중심 도시 바야돌리드(Valladolid)를 비롯해서, 우리 귀에 익숙한 세고비아(Segovia)에는 알까사르(Alcazar) 성이 기괴한 모습으로 자리하며, 그 이전의 위대한 로마인들이 남겨 놓은 건축물인 아꾸에둑또(Acueducto)라는 수로가 버티고 있다.                                         (세고비아의 로마시대 수로, Acueducto de Segovia) 또한 스페인 도시 중에서 가장 엄숙하고 조용한 분위기를 주며 수도원으로도 유명한 아빌라(Avila)가 있고, 엘 시드(El Cid)의 고향인 부르고스(Burgos)가 있다. 이 밖에 유럽에 세워진 초기 대학 중의 하나로, 세계의 유서 깊은 대학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살라망까 대학이 위치한 살라망까(Salamanca)와 로마인들의 주요 거점이었던 레온(Leon) 및 소리아(Soria), 빨렌시아(Palencia)와 사모라(Zamora) 등도 빼놓을 수 없다. (세고비아의 옛 왕궁, Alcazar de Segovia) ‘바야돌리드’는 지금은 조용한 도시가 되었지만, 황금세기에는 꽤나 분주한 도시였다. 똘레도(Toledo)가 도시로서의 한계를 느끼자 왕실과 귀족들 사이에서는 수도 천도의 주장이 흘러나왔고, 논란 끝에 정한 곳이 한적한 마을 마드리드(Madrid)였으나, 입김 센 귀족들이 많이 거주했던 바야돌리드가 잠시나마 수도의 역할을 담당했었다. (이사벨과 페르난도의 결혼, Bodas de Isabel y Fernando en Valladolid) 바야돌리드는 이사벨 여...

[문예] 바야돌리드(Valladolid), 양고기와 와인의 그 맛을 기억하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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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돌리드의 젖줄이자, 포도 농사와 포도주 생산에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자연물이 ‘두에로 강’이다. 넓이는 30미터 정도이지만 바야돌리드 지역을 길게 흐르고 있어 어디서나 물을 쉽게 얻을 수 있다. 물이 흐르는 곳마다 포도 농사가 성행하며, 아름드리나무들이 빼곡히 차 있어 사막 같은 광야에서도 그런대로 쉴 수 있는 그림자의 섬을 만들어 낸다. 이런 나무 가운데 떡갈나무들은 포도주 통에 사용되고, 남는 것들은 가구를 만드는 데 사용된다. 이것이 바로 이곳에서 가구 공업이 시작된 원인이며, 원목은 스페인 가구 공업의 대표 도시인 발렌시아로 옮겨지기도 한다. 일본이나 한국으로 가는 스페인산 가구의 상당수가 여기서 나오는 재목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특히 세고비아 쪽으로 가는 길에 늘어선 가구 공장에서는 정교하고 예술성 높은 스페인 가구를 생산하고 있다.                                                                        (Rio Duero) ‘시망까스’(Simancas)라는 아주 작은 마을이 있다. 그러나 이곳이 가지는 중요성을 생각한다면 결코 무시하고 지나칠 수만은 없다. 스페인의 많은 도시들 중에서도 미주 대륙을 점령하고 엄청난 부를 쌓을 때의 중심 지역이 세비야였다면, 거기서 가져온 자료들이 보관된 곳이 시망까스이다. 시망까스가 이렇게 다른 지역의 물자를 전시하고 있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없을 것 같지만, 사실 세비야가 모든 경제의 중심지로 있었을 때, 바야돌리드는 살라망까와 함께 중요한 정치적, 학문적 중심지였음을 알고 나면 쉽게 납득이 갈 것이다. 세비야에는 중남미의 것들이 전적으로 ...

[문예] 바야돌리드(Valladolid), 양고기와 와인의 그 맛을 기억하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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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에로(Duero) 강이 잉태한 바야돌리드 (Valladolid) 마드리드에서 180킬로미터 떨어진 바야돌리드는 두 시간 정도 열심히 달려가면 닿을 수 있다. 마드리드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갈 경우, 부르고스와 라 꼬루냐로 향하는 길로 빠져나가 한 시간 정도 길을 가면 살라망까(Salamanca), 포르투갈(Portugal), 바야돌리드, 라 꼬루냐(La Coruna), 부르고스(Burgos) 등의 이정표가 보인다. 라 꼬루냐로 가는 길과 사모라(Zamora) 그리고 부르고스 및 바야돌리드로의 길이 나뉘는 지점에서 부르고스를 선택해서 가다 보면 바야돌리드에 먼저 닿는다. 고속도로도 잘 다듬어져 있기 때문에 고도가 높아진 주변 경관을 보면서 편안하게 운전할 수 있어 좋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완전히 고속도로만을 타는 경우이고, 주의할 것은 터널을 통과한 후, 국도를 선택하는 경우와 고속도로를 계속 타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이다. 국도인 경우는 오른쪽에 먼저 표지판이 나오며, 표지판은 흰색으로 되어 있는 게 특징이다. 스페인에서 고속도로는 ‘아우또삐스따’(Autopista)라 하여, 청색 바탕의 표지판으로 되어 있다. 국도는 2차선이고 폭이 좁지만, 거리상으로는 10킬로미터 이상 단축하게 되는 이점이 있다. 가는 도중의 길에는 올메도, 나바 델 레이(Nava del Rey), 라 세까(La Seca), 폰까스띤, 뻬냐란다 데 브라까몬떼, 산 미겔 델 삐노, 시망까스(Simancas), 헤리아 등 작은 마을 옆을 지나게 되니, 중간중간에 빠져나와 한적한 마을에서 간편한 음료나 식사를 즐길 수도 있겠다.                                                           ...

[연재소설] 귀향(세르반테스를 만난 조선인) / 15.멕시코(Méxi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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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멕시코 (México)  “네, 산 후안 바우띠스따 호는 1613년 10월 28일, 그러니까 음력으로 9월 15일, 센다이의 쑤키오우라 만을 출발했습니다. 배는 1613년 11월, 필리핀과 멕시코를 오가던 해상 항로를 타고 멕시코의 까보 멘도시노에 닿았습니다. 출발점인 일본에서 직선으로 갔을 때 태평양 넘어 첫 번째로 만나는 섬입니다. 여기서 다시 캘리포니아 반도의 해안을 따라 내려간 배는 1614년 사까뚤라를 지나, 일본을 떠난 뒤 3개월 만인 1614년 1월 25일, 아까뿔꼬에 도착했습니다. 우리 사절단은 미리 보고를 받은 디에고 페르단데스 데 꼬르도바라는 멕시코의 부왕이 보낸 대표단으로부터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습니다. 이후, 내륙지방을 2개월 이상 이동해, 1614년 3월 24일, 멕시코시티에 도착, 멕시코를 다스리는 최고 책임자인 부왕과 후안 뻬레스 주교로부터 큰 환영을 받았습니다. 마침 세마나 산따, 즉 성주간이어서 4월 9일에는 일행 중 20명이 세례를 받았고, 4월 20일에는 22명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후 4월 23일에는 주교로부터 63명이 세례를 받았으니, 저처럼 이미 일본에서 세례받은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이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세례교인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사절단은 다시 동쪽으로 이동, 뿌에블라를 거쳐, 베라끄루스에 도착했습니다. 1614년 6월 10일, 베라끄루스에서 산 후안 데 울로아라는 스페인 배를 타고 아바나를 거쳐, 대서양으로 나가, 스페인으로 향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기독교 신부 40명 ...

[연재소설] 귀향(세르반테스를 만난 조선인) / 14.미션(Misio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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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미션 히데요시의 치하에서도 기독교에 대한 탄압은 있었지만, 권력이 이에야스로 넘어가면서 그 양상은 심해졌다. 권력의 이동과정에서 일어나는 정치적 대립과 피바람은, 오히려 기독교에 대한 강력한 탄압으로 번졌다. 절박한 상황에 처한 일본의 선교사들은, 자신들이 자체적으로 준비했다가 실패했던 사절단 파견을 포기하고, 일본 내에서는 무시 못 할 세도가였으며 신실한 기독교도인 마사무네에게 요청하여 사절단을 구성하게 되었다. “비센떼 권, 즉 성빈 형과 저는 사절단의 일원으로 함께 갈 생각이었습니다. 루이스 신부도 그렇게 하자고 동의했습니다. 따라서 배를 짓고, 출항 준비를 함께 했습니다만, 출발을 바로 앞두고 일본의 예수회 본부로부터 조선의 기독교 대표로 임명받은 비센떼 권이 포교를 위해 직접 조선으로 들어가라는 임무를 부여받게 됩니다. 예수회 소속으로 포르투갈 출신인 프란시스꼬 빠체꼬 신부와 함께 우선 북경으로 가고, 거기서 다시 조선의 북쪽 변방을 통해 들어가 포교한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일본과의 전쟁 후, 남쪽은 경계가 심하지만, 상대적으로 북쪽은 감시가 약하고, 접근이 수월할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입니다. 임무를 받은 비센떼 권은 지체할 수 없다고 판단, 1612년 북경을 향해 먼저 출발했고, 저는 1613년 배가 완성된 후 루이스 신부와 동쪽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비센떼 권과 저는 헤어지기 전 만나, 꼭 조선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습니다. 성빈 형은 중국에서 조선으로 들어가 기독교를 알리고, 서양 선교사들이 일본에서 하듯이 조선에서도 기독교를 체계적으로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했으며, 저는 유럽으로 가서 조선을 알리며, 교황청에도 조선에 선교사를 파견해줄 것을 간곡히 요청하기로 했습니다. 말하자면, 같은 사절단이지만, 일본인들은 ...

[연재소설] 귀향(세르반테스를 만난 조선인) / 13.사무라이(Samur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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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사무라이   “180 명으로 구성된 사절단의 단장은 하세쿠라 쓰네나가였습니다 . 마사무네 휘하에 있는 사무라이이며 ,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에 참전하는 등 , 전투 뿐 아니라 , 항해술도 인정받은 사람입니다 ." “쓰네나가는 어떤 사람이오 ? 지난 번 세례식에서 봤을 때 , 그에게서 보통 사람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대단한 기운 같은 걸 느꼈소 . ” “네 , 독실한 기독교 신자입니다 . 물론 , 분명한 사무라이입니다 . 사무라이라고 하면 , 어르신께서 쓰네나가를 보고 처음 느끼셨다는 그 분위기 바로 그것입니다 . 주군에 대한 충성 , 절제와 단호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 마사무에와는 비록 세 살 차이 밖에 나지 않지만 , 그 누구보다도 자신을 처음부터 지원해준 그를 주군으로 따르고 , 충성을 다하는 사무라이 중의 사무라이라고 생각합니다 . 서양의 기사들이 어떤 목적과 맹세를 갖고 전쟁에 나갔는지는 모르겠으나 , 사무라이들은 어떤 명분보다도 주군의 뜻에 따라 목숨까지도 내놓는 충성도가 중요합니다 . 약한 자를 위해서 , 여인을 보호하기 위해 , 그리고 자신의 명예를 위해 전투를 하는 멋진 신사 , 정의의 신사가 돈키호테라면 , 사무라이는 이기기 위해서 , 목숨을 내놓습니다 . 자신이 아니라 , 주군이 명하는 바를 따르고 승리하는 것만이 명분이고 명예입니다 . ” “아 , 그렇군 . 그대가 말하는 사무라이와 내 소설에서의 기사 돈키호테를 비교하기는 어렵군 . 사실 돈키호테라를 기사의 표상으로 볼 수는 없소 . 그는 이 땅에 존재했던 중세의 기사와는 거리가 먼 존재요 . ”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 그럼 , 돈키호테는 원래의 기사와 다르다는 뜻인가요 ? ” “그렇소 . 원래 서양의 기사라는 게 , 사무라이의 그것도 아니지만 , 돈키호테가 보여주는 그런 기사도 아니오 . 기사라는 것은 우리 시대에 존재하지 않소 . 다만 , 작품 속으로 들어온 기사라고나 할까 ? 중세의 기사와는 사뭇 다른 , 허구화 된 존재인 것이오 . ”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