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강의] '등장인물'인가, '작가'인가?

이미지
https://youtu.be/MJfzBbFFSJ4 https://www.youtube.com/@Dali-Imagination-Space #Metafiction #메타픽션 #다층적 서술자 #작가의 죽음 #독자 반응 비평 #수용자 이론 #작가의 권위 해체 #현실과 허구의 교차 #원작과 위작의 긴장 #인물의 자기인식 #독자의 공동 창작 #위작 #플롯의 수정과 전환 #기사소설의 패러디 #서사 전통 성찰 #텍스트의 자의식 #자기 검열 #다성성 #경쟁하는 목소리 #해석의 개방성 #의미 갱신 #desengaño #engaño

[인문학강의] 1장 1절부터 모호하게 시작된다!

이미지
강의 동영상 유튜브 주소:  https://youtu.be/vnfXrtqZO1U

[DQ] 세르반테스에게 위작의 출현은, 오히려 '천운'이었다!

이미지
피카소의 그림을 보며, 그림 중 물감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고는, ‘뭔가 의도가 있을 거야’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위대한 작가(?)의 위대한 작품(?) 앞에서, 우리는 주눅이 들고 만다. ‘명화’라고 하면, 모든 게 ‘의도적’이고, ‘완벽한 것’으로 생각하기 일쑤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작품을 만든 사람의 의도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고상하고(?), 수준 높은(?) 것일까? 답은,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가 될 것 같다! [돈키호테]는 모순과 실수투성이의 작품이다. 일관성도 떨어지고, 숫자도 틀린다. 이름도 이랬다, 저랬다 하고,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명작’으로 꼽는다. 엉터리 작품(?)을 쓴, 세르반테스는 다행히 자신에 대해 보호막을 쳐놓고 작품을 썼다. 원래의 작가는 아랍사람 시데 아메떼 베넹헬리라고 했고, 일부분에 대해서는 번역가를 시켜서 했다고 했다. 아울러, 세르반테스 대신에 돈키호테라는 인물이 작품의 잘 잘못을 말해준다. 그러는 돈키호테는 광기에 빠진 사람이다. 이 얼마나, 좋은 방법인가? 모든 실수와 틀린 것에 대해, 일시에 면죄부가 주어진다. 거기다, 틀리고 이상한 것은 ‘마법사’의 농간이니, 완벽한 ‘방패막’을 쳤다. 1514년 [돈키호테] 2권이라는 위작이 나왔다. 세르반테스가 2권의 후반을 쓰고 있을 무렵이었다. 위작은 사람들 사이에서 크게 회자된다. 세르반테스에게는 굉장히 난처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2권 59장부터 이 도전에 대한 응전의 흔적이 반영되는데, 글쓰기로 인한 에너지 고갈에, 위작까지 나온 판에, 세르반테스는 정신적인 혼란을 겪은 것 같다. (실제는 그는 책 출판 후, 다음 해에 사망한다.) 거기다가, 그의 ‘반골기질’은 크게 발동해, 위작의 내용과는 다르게 하려고 온갖 힘을 다한다. 그런 중에, 돈키호테의 실제 이름까지 밝히고, 그의 조카 딸 이름까지 세상에 드러내놓는다. 원래, 이들의 이름은 밝히지 않으려 했...

[인문학강의] '명작'이라면, '실수'도 높게 봐준다?! / Los errores de Cervantes

이미지
 강의 동영상 유튜브 주소:  https://youtu.be/Fxtu5Pkpp3s                

[문예] 황새 둥지에 눌린 콜라주, 그리고 백남준(II)

이미지
예술의 현실적 구현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할까? 아니면 자신이 갖지 못했던, 그래서 예술로 실현해 보고자 했던 부족한 무엇을 메르세데스는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여러 가지 의문을 품은 채, 그의 예술은 ‘전위’라는 단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전위의 상징으로 자리하고 있다. 미술관 내부의 설치예술 작품들    보스텔이 이곳에 정착한 것은 첨단 예술 때문이 아니라, 이곳의 자연 때문이다. 첨단의 산업화된 도시에 살았던 그에게 이곳의 자연은 예술 행위의 '백지'와 같았으며, 백지 역시 또 하나의 예술이었다. 미술관이 있는 자리는 원래 양털을 깎아 처리하던 곳이었다. 한창때 온 마을 사람이 이 사업에 전념했었고, 여기서 생산된 양털은 풍부한 물을 이용해 세척되고 건조되고 처리된 후 유럽으로 팔려 나갔다. 당시에는 대단한 사업이었다. 그 후 양모 사업이 다른 것으로 대체됨에 따라 양모 처리 공장은 폐쇄되고 흉물로 남아 있었는데, 우연히 이곳을 찾아든 보스텔에게는 이상적인 예술 공간으로 보였던 것이다.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 미술관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사물은 수레를 비롯해 자동차, 텔레비전, 라디오, 오토바이, 청소기, 피아노, 시멘트 등이다. 이들은 작가의 의도에 따라 예술품으로서 우리와 마주하고 있지만, 석기시대 사람들이 남겨 놓은 생활의 흔적이 돌 유적이듯 우리에게 이것들은 그저 지금 시대의 삶의 단면으로 다가올 뿐이다. 천 년 후, 새로운 사람들이 이 땅을 판다면 무엇이 나올까? 만일 이곳에서 찌그러진 자동차와 타이어 그리고 이상한 번호판이 튀어나오고, 비행기 잔해와 청소기가 발굴된다면 그것은 '유적'인가 '쓰레기'인가? 살바도르 달리와 보스텔 우리는 스페인 북부 알따미라(Altamira) 동굴에서 발견된 동물 그림을 유적이며 예술품으로 본다. 그리고 사고 난 자동차로 무언가 의사 표시를 하면 이 역시 예술로 본다. 원시예술에 비해 지금의 예술은 유희가 아니라 처절한 투쟁이고, 자기부정과 반성이 확연하게 드...

[문예] 황새 둥지에 눌린 콜라주, 그리고 백남준(I)

이미지
스페인의 수도이자 중앙에 위치한 마드리드에서 서부 엑스뜨레마두라(Extremadura)로 가는 길은 과거의 긴 터널로 들어가는 기분을 준다. 포르투갈의 리스본까지 이어지는 왕복 4차선 좁지 않은 그 길을 따라 끊임없이 펼쳐지는 들판은 말 그대로 황금색이다.                                                                              황금! 그것은 바로 스페인이 중남미로 향했던 그 시절, 이곳의 가난한 젊은이들이 현실을 바꾸기 위해 꿈꾸었던 이상이었다. 강렬한 태양을 받은 광활한 풍경이 이어지는가 하면, 중간중간 올리브 나무들이 한데 모여 산과 밭을 이루고 있는 모습, 그것야말로 전통과 신비를 품은 세계, 엑스뜨레마두라이다. 이 길로 접어들면 마드리드에서 가까이에 도자기로 유명한 딸라베라(Talavera de la Reina)가 있고, 거기를 넘으면 중남미 성모 마리아의 원조가 된 도시 과달루뻬(Guadalupe), 그리고 중남미 정복자들의 땅 뜨루히요(Trujillo)를 지나게 된다. 우리의 여정은 이어 바다호스(Badajoz), 메리다(Merida)를 거쳐 엑스뜨레마두라 자치주의 대표적인 도시 까세레스(Caceres)에 닿게 되고, 거기서 가까이 말빠르띠다(Malpartida)라는 마을의 작은 미술관에 머문다. 주변 마을들과는 달리 여기에서는 갖가지 형상을 띤 바위들을 볼 수 있으며, 그 형태로 인해 약간의 신비감마저 느끼게 된다. 보스텔 미술관(Museo de Vostell)! 이렇게 작고 볼 것 없는 마을에 미술관이라니, 게다가 버려진 듯 벌판에 덩그러니...

[DQ] '역사서'로서의 [돈키호테] / La España de [Don Quijote]

이미지
스페인에서 기독교가 이슬람 세력을 물리치는 과정을 '국토회복전', 즉 '레꽁끼스따'라고 한다. 원래의 자기 영토를 되찾는다는 이 말은 사실, 매우 정치적이다. 711년 히르랄따르(지브롤터)를 통해 들어온 이슬람 세력은 1492년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왕의 합작에 의해 그라나다에서 추방당했다. 거의 800년 동안의 시간은 단순한 종교적 대결로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왕국과 왕국 간의 대결과 정복전쟁, 그리고 통일과 중앙집권적 통치의 과정으로 봐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국토회복전'이라고 하면, 마치 기독교가 이슬람교를 물리친 것으로 단순화할 수 있겠으나, 실상은 기독교 왕국 간에도, 그리고 이슬람 왕국 간에도 서로 반목과 대결은 늘 있었다. 결국 국토회복전이 아니라, 왕국들이 하나의 근대국가로, 그리고 중앙집권적 통일 국가로 가는 과정에, 스페인 땅에서는 기독교와 이슬람교 간의 대결 구도로 단순하게 설명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일반 사람들 사이에는 기독교를 믿는 자와 이슬람교를 믿는 자, 그리고 유대교인과 종교가 없는 사람들이 함께 살았다. 가족 안에도 종교가 달랐을 것이니, 진영을 나누는 정도가 될 수 없다. 1492년 그라나다를 함락한 사건은 동시에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한 것과, 스페인어 문법서를 안또니오 네브리하가 낸 사건이 동시에 벌어졌다. 그리고 100년, [돈키호테]가 나올 때까지의 시간은 통일왕국의 왕권이 강화되고, 제국을 건설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 '하나'를 만드는 과정에, 기독교가 중심축이 되었으니, 스페인 땅에서는 유대인 추방, 이슬람교인 추방, 그리고 이제는 이런 종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에 대한 불신과 추방이 있었다. 세르반테스와 아주 가깝게, 1609년에 펠리뻬 3세가 개종한 사람들, 즉 모르스꼬들을 추방했으며, 이는 1613년까지 지속적으로 진행된다. [돈키호테]는 이런 역사적 흔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특히, 산초의 마을 친구인 리꼬떼...

[인문학강의] 산초의 마을 친구, 리꼬떼가 말해주는 그 때의 스페인

이미지
 강의 동영상 유튜브 주소:  https://youtu.be/a8_StNfKyoU

[문예] 까를로스 1세와 펠리뻬 2세 시대의 영토

이미지
까를로스 1세와 펠리뻬 2세 시대의 영토 합스부르크(Habsburgo)의 프리드리히 3세의 아들 막시밀리안(Maximiliano I de Habsburgo)과 프랑스 부르고뉴 공국 샤를 대공의 딸 마리(María de Borgoña)는 1477년 결혼하여 아들 필리프(펠리뻬)를 낳았다. 당시는 강대국과 강대국, 강대국과 약소국 간의 정략결혼이 왕실 결혼의 행태였다.  한편 이베리아 반도에서는 아랍 세력을 물리치면서 강력한 기독교 국가가 확립되어 영토와 세력을 키워 왔으니, 통일의 과정에서 아라곤(Aragón) 왕국의 페르난도(Fernando)와 까스띠야(Castilla) 왕국의 이사벨(Isabel)이 결혼하고, 거기서 후아나(Juana)라는 딸이 태어난다.                        (María de Borgoña y Maximiliano de Habsburgo)                                                                                         (Isabel y Fernando) 국토 통일과 함께 강력해진 스페인의 딸 후아나(이후 '미친' 후아나 1세)에게 강국 스페인을 경계하고 있던 합스부르크 왕가가 화친의 의미로 잘생긴 필리프(이후 '미남' 펠리뻬 1세)를 남편감으로 보내니, 1496년 결혼이 성립되었다.       ...

[DQ] 삶은 '소명'이나, '의미'가 아니라, '상상하는 행위', 그 자체다!

이미지
우리는 '삶'을 말할 때, 삶의 '사명'이나 '소명', 그리고 '의미'를 말하곤 한다. 아주 '어른스러운' '의문'이고, '답'이다. [어린왕자]의 맨 끝에, '한 마리 양이 한 송이 장미꽃을 먹었느냐, 먹지 않았느냐' 정도로 좀 쉽게 생각하면 안될까? 물론, 이 양과 장미에 대한 의문은 어린왕자에게 '천지가 온통 바뀌게 될 일'이지만 말이다. 무슨 말인가? 그렇다! '상상'에 대한 이야기다! [어린왕자]가 주는 중요한 메시지는 바로, 이 '상상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문학에 대해서는 참으로 많은 '정의'와 '설명'이 있다. 그런데, 문학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의 하나는 바로, 이 상상의 발휘이면서, 그 상상이 다른 사람의 상상을 자극하는 일이다. 한편, 문학의 이런 기능을 가장 잘 수행하는 핵심적인 요소가 있다. 바로, '애매모호성'이다! "애매모호?!" 우리가 말하는 '어른들'들로부터는 비난받을 자세다! "자네의 꿈은 무언가?"라는 질문을 우리 사회는 자주 한다. 거기에, 우리는 어떤 특정한 멋진 직업을 말해야 '잘 자란 청년'으로 취급받는다. 만일, "행복한 삶이요!"라는 답을 내는 청년이 있다면, '부정의 딱지'를 맞게 된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비현실적인 존재', '무능한 존재', '꿈이 없는 인간'으로 전락된다. [돈키호테]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애매모호성의 안개가 끼어있다. 그래서, 돈키호테를 그렇게 비난해왔는 지 모르겠다. (물론, 요즘은 돈키호테를 좋게 평가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문학, 또는 한 편의 '시'가 갖춰야 할 요건이 애매모호성이라면, 그 작품은 수...

[인문학강의] 애매모호성의 미학 / La ambigüedad

이미지
강의 동영상 유튜브 주소: https://youtu.be/gBZRO9edbrA

[연재소설] 귀향(세르반테스를 만난 조선인) / 26.위작(El Quijote de Avellaneda)

이미지
26.위작   이태리 방문을 마치고, 다시 스페인 땅을 밟은 일행은 지중해 항해의 출발지였던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거기서는 갔던 길의 역순으로 도시들을 거쳤으며, 마드리드에 도착해서는 다시 수도원에 머물게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몬세랏 산을 통과하지 않았는데, 갈 때보다는 일정을 단순하게 하여, 속도를 내기 위해서였다. 앞으로 갈 길도 멀지만, 빈손으로 돌아갈 공산이 크다는 심적 부담이, 이들의 발길을 재촉했다. 바티칸에서 교황을 알현하고, 일본 내의 기독교 탄압과 그에 대한 교황청의 적극적인 대책을 요청했으나,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답은 받지 못 했다. 오히려, 스페인 왕에게 그 지원 여부를 물어보라는 정도의 답을 받았을 뿐이었으니, 멀고 긴 거리를 온 사람들에게는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사실 스페인 왕의 입김은 교황청에 강하게 미쳤다. 그렇기에 교황은 스페인 왕의 눈치를 보는 것도 있었다. 그렇다고 교황이 주저하는 것을, 스페인 왕이라고 선제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결정할 입장도 아니었다. 게다가 펠리뻬 2세의 집권기에는 스페인 왕이 내리는 결정은매우 절대적인 힘을 가져서, 교황청에서도 스페인 왕실이 내린 사항에대해서는 그대로 따랐지만, 그의 아들 펠리뻬 3세 시대에는, 오히려 교황과 스페인 왕과의 관계가 그리 매끄럽지 못했다. 권력이 이동하는 전환기에 서로 조심하고, 견제하는 정도였다. 마드리드에 도착하면서, 루이스 신부는 왕실과 접촉하고, 로마 방문의 결과와 함께 스페인 왕의 지원 및 멕시코와 필리핀 간의 은 교역 독점권을 없애고, 일본이 그 무역에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을 다시 한 번 더 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왕실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변했다는 사실을루이스 신부와 쓰네나가는 감지하고 있었다. 그것은 사절단이 떠난 후, 일본 내 급변하게 진행되고 있는 권력 이동을 반영하는 것이었고, 스페인 왕실의 여력도 매우 약해졌다는 뜻이기도 했다. “석희씨, 건물 밖에 호세라는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찾아온 사람이 호세라는 소리에,...

[스페인 와인] 포르투갈의 와인

이미지
포르투갈의 와인 스페인과 함께 이베리아반도를 차지하고 있는 포르투갈은, 그래서 스페인과 깊은 역사적 관계를 갖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남부 프랑스와 스페인 북부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오늘에 이어진다. 언어도 오히려 스페인 서북부의 갈리시아어와 유사하며, 그것은 다시 프로방스 등 프랑스 남부의 언어 및 습관과 이어졌으니, 특히 기독교인들이 아랍 세계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에서 스페인 서북부 지역이 특히 교류가 잦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두오로(두에로) 강과 강 유역 강유역의 포도밭 와인을 볼 때, 이 나라 와인은 주로 두오로(Duoro) 강을 중심 젓줄로 하여 생산되며, 나름대로의 독특한 포도품종을 통해 독특한 와인이 만들어지고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포르투갈에도 ' 바이라다' (Bairrada)란 일종의 까바, 또는 샴페인을 제조하며, 화이트와인으로는 스페인 갈리시아의 리아스 바이사스에서 만날 수 있는 청포도품종인 알바리뇨(Alvarinho)가 사용되어 비노 베르데(Vinho Verde)가 대표적 와인으로 꼽힌다.  물론 비노 베르데는 꼭 청포도만을 쓰는 것은 아니어서 가끔은 적포도도 이용되지만, 대부분 청포도를 갖고 만든다. 와인의 이름에도 나타나고 있지만, 이 와인은 스페인의 끄리안사보다도 더 젊은 편이며, 그래서 산성 기운이 많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오뽀르또(Oporto) 포도밭 수확장면 스페인의 포티파이트와인으로서 가장 잘 알려진 것이 '세리'라면, 오랜 옛날부터 세계인들에게 알려진 것이 ' 뽀르또' (Porto)이다.  포르투갈이란 나라보다 오히려 '뽀르또'란 것에 익숙해져 있는 한국 사람들도 찾아볼 수 있는데, 오래 전부터 미군부대를 통해 이것이 외부로 유출되면서 소주를 즐기던 한국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의 와인으로 각인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뽀르또(포트, Porto) 와인 '뽀르또'(Porto)는 'Vinho de Porto'라고 부르며 이것은 '오뽀르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