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강의] '등장인물'인가, '작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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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강의] 책을 태워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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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동영상 유튜브 주소:  https://youtu.be/erY4Up6P2g0

[연재소설] 귀향(세르반테스를 만난 조선인) / (마지막회)44.도착(Lleg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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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기자님, 드디어 알아냈습니다.” “뭐, 그럼 예상하신대로 일본인이 아니라, 조선인이었던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조선인 송석희, 바르똘로메 로드리게스 꼬레아! 제가 여러 물증과 자료를 준비해서 갈 테니, 귀국하는 즉시 만납시다.” 세비야 공항으로 가면서, 종국은 평소 잘 알고 지내는 김영남 기자에게 연락했다. 외무부 출입기자들 중에 친분이 생기고, 차라도 함께 마시면서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때, 가끔 종국은 자신이 오랫동안 관심을 갖고 연구해온 내용을 말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귀담아 듣지 않았으나, 김 기자는 남다른 관심을 표명했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라면, 다큐멘터리 제작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말도 했었다. 종국의 전화를 받은 그의 목소리도 흥분되어 있었다. “김 기자님, 감사합니다. 짧은 기간 동안 참 많은 것을 알게 됐습니다. 특히, 하뽄이라는 집안에서 대대로 보관해온 자료들이야 말로 그동안 어떤 자료보다도 귀중한 것이었습니다. 역사를 바꿀 내용이자, 400년을 기다려온 영혼들을 달래줄 수 있는 큰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요? 정말로 궁금합니다! 빨리 돌아오세요!” 훌리아와 안또니오, 그리고 종국이 탄 차는 이내 공항에 도착했다. 종국은 마드리드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수속을 마쳤다. 짐을 실으면서 복주머니는 짐가방에 넣지 않고, 왼쪽 가슴 안주머니에 넣었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저희 집안의 내력을 이제야 정확히 알게 된 것이 기쁩니다. 저희들 뿐 만 아니라, 하뽄이라는 성을 가진 많은 사람들의 정체성을 이 번 기회에 정확히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네, 저도 제가 어릴 적 보았던 그 편지와 물건들이 어디에서 유래되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스페인과 한국은 서로 연관성도 없고, 멀게만 느껴지는 관계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스페인과 한국의 시골 마을의 서로 다른 집안에서 보관되어온 자료들이 수백 년의 세월 동안 서로 이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비록 글자들이지만 영혼이 깃든 ...

[연재소설] 귀향(세르반테스를 만난 조선인) / 43.동상(Estatu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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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세쿠라 쓰네나가의 동상이군요. 종국은 송석희가 고향을 생각하면서 늘 바라봤을 강을 직접 보고 싶었다. 셋은 안또니오의 집을 나와 강으로 향했고, 강 옆 공원에 다다랐을 때, 쓰네나가의 동상이 서있었다. 사무라이의 동상은 마을 앞을 흐르는 강을 한 눈에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도 송석희가 많은 시간 고향을 그리워했을 바로 그 자리일 것이라 종국은 생각했다. 하세쿠라 쓰네나가의 동상 안또니오의 말에 의하면, 세비야의 고문서 보관소에서 마사무네의 편지가 발견된 것은 1862년이었고, 그것을 계기로, 1882년 당시 파리에 주재했던 일본 대사가 세비야를 방문했다고 한다. 그 후 오랫동안 묻혀있던 이 이야기는 1992년 세비야 세계엑스포를 맞아 나루히토 왕세자가 직접 방문하여 쓰네나가의 동상 제막식을 했다고 한다. 나루히토 왕세자(현 일본천황)의 기념식수 이후, 양국 간 교류는 활발해지고, 그 과정에서 많은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1620년 이후, 세례명부에 하뽄이란 성이 등장하기 시작해서, 주변 엑스뜨레마두라 지역까지 넓혀졌다는 사실도 확인되었다. 물론, 세비야 시에 있는 한자로 된 자료와 일본 사절단에 대한 기록물은 물론, 마드리드 왕실의 고문서를 통해서도 일본 사절단의 방문이 확인되었다. 세비야에서는 이들과 관련된 행사 및 관련 비용의 지출 내역까지 발견되었고, 왕실에서도 일행의 모습을 담은 그림을 찾아냈다. 하뽄이라는 스페인 성이 일본 국명을 부르는 스페인어 표현과 일치하고 있는 것이 우연이라고 생각했던 하뽄 성씨의 사람들은, 뜻밖에 자신들의 기원을 알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는 동상 앞에 선 종국은 고개를 숙였다. 그의 머리에는 여러 가지 장면이 떠올랐다. 조선과 일본, 멕시코, 스페인, 이태리, 네덜란드, 포르투갈, 그리고 중국과 마카오. 그레고리오 데 세스뻬데스, 루이스 소뗄로, 하세쿠라 쓰네나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 로뻬 데 베가, 피터 폴 루벤스…. 무엇보다도 송석희, 권성빈, 안도현 등과 유럽 땅을 밟은 ...

[연재소설] 귀향(세르반테를 만난 조선인) / 42.복주머니(Reliqu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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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이것은 우리 집안에 내려오는 물건입니다.” 안또니오의 손에 뭔가가 들려있었다. 그것을 본 종국은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복주머니였다. 분명 여러 색으로 꾸며진 복주머니는 작았고, 오랫동안 매만졌는지 손때가 깊이 배어있었다. “이 물건은 집안의 여러 문건들과 함께 수백 년 동안 보관되어 전해오고 있습니다. 오늘 여러가지 상황을 파악해보니, 이것은 조선의 것이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바르똘로메 로드리게스 꼬레아, 아니 송석희 님이 남긴 물건 말입니다.” 상기된 얼굴의 안또니오는 송석희의 이름을 아주 또박또박 발음하고 있었다. “네, 그게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지역에서 꼬레아라는 성은 없고, 하뽄이라는 성으로 내려오는 것에는 어떤 연유가 일까요?”   일기와 자료를 함께 읽은 종국이 이 분야에 대해서는 전문가인 훌리아에게 물었다. “사실, 꼬레아라는 성이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묻혀버린 것이죠. 즉, 스페인에는 전통적으로 꼬레아라는 성이 있습니다. 그 숫자는 많지 않지만 말입니다. 이태리에도 그 성이 있는데, 아마도 스페인어로 꼬레아가 ‘가죽띠’, 또는 ‘혁대’라는 뜻이기 때문에, 스페인이나 이태리에서 꼬레아는 원래가 가죽과 관련된 업종에 종사한 집안을 말하는 성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보통 서양에서의 성은 그 직업에서 따온 게 많은 것을 보면 쉽게 유추할 수 있습니다. 주로 일이라는 게, 가내에서 계승되는 경우가 많았으니, 성으로 전환된 것이겠죠. 따라서 여기서의 꼬레아는 ‘R’이 두 개로 된, Correa로 쓰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최근 제가 책을 쓰면서 발견한 바르똘로메 로드리게스 꼬레아라는 분은 자신의 이름에 성을 달면서, 맨 뒤에 Corea를 넣고 싶었고, 그래서 넣었을 것입니다. 그의 사촌이라고 말하고 있는 바르똘로메 로드리게스 하뽄이 일본임을 나타내주기 위해 국가 이름을 넣었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말씀드린 바와 같이 스페인에는 Correa라는 성이 이미 존재했기 때문에, 그것을 따르는 것도 ...

[인문학강의] '멘토'를 뛰어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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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귀향(세르반테스를 만난 조선인) / 41.비센떼 권(Vicente Kaun)(Vicente Ca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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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는 앞에서 와는 다른 서명이 들어있습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은 편지인 것 같습니다.” 안또니오는 둥글게 말아서, 통에 보관되어 있는 서류를 펴며, 종국에게 보여주었다. 그것은 송석희가 쓴 일기나 쪽지와는 분명 다른 것이었다. “그렇군요. 이건 분명 다른 이름입니다.” 수신은 송석희, 바르똘로메라고 써있고, 서명하는 곳에는 한글로 조선인, 그리고 권성빈이라는 한자, 그리고 그 옆에 스페인어로 비센떼가 쓰여 있었다. 종국은 또 다른 흥분을 느꼈다. 그동안 자신이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비센떼 권이라는 사람에 대해 읽은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때 조선 장군의 아들로 일본에 끌려와 기독교를 전파하다 순교한 사람이다. 교황청에서 복자로 지정하고, 그 옆에 출신지를 꼬레아라고 적시했줬다. 그런 인물이 송석희에게 편지를 썼다는 것과 그것이 스페인 땅에 남아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종국은 떨리는 마음으로 긴 편지를 읽어나갔다. 그리운 석희, 바르똘로메 형제에게. 우리가 일본에서 헤어진 후, 나는 프란시스꼬 빠체꼬 신부와 함께 북경에 가서 조선에 들어갈 기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네. 우여곡절 끝에 조선과의 국경에 닿았지. 나는 천주의 복음을 알리겠다는 사명보다도, 조국의 땅을 밟는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게 설레었네. 내딛는 한 발 한 발이 소중했고, 눈물의 발자국이었지. 그렇게 한양까지 갈 수 만 있다면, 그리고 한양의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마치 황홀한 꿈을 꾸듯 걸었네. 그러나 국경의 상황이 여의치 않았지. 외국인이 낀 우리 일행은 즉시 조선의 국경수비대에 발각되었다네. 서양인이라면 모두 기독교도라는 인식 때문에 무조건 체포를 했던 것이지. 한편, 국경수비대의 조직은 너무나 허술했기에, 탈출 또한 어렵지 않았지. 우리는 수비대를 벗어나, 다시 입국을 시도하려고 여러 가지 방법을 쓰던 중, 마카오에 와있던 니콜라스 트리골트라는 신부가 유럽에 사절단을 구성한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네. 트리골트 신부는 1606년 포르투갈을 출발, 인도...

[연재소설] 귀향(세르반테스를 만난 조선인) / 40.소식(Notici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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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사람이 읽은, 또 다른 글에서는 동양에서 온 사람들을 통해, 석희 자신과 관련되었던 사람들의 소식을 기록하고 있었다. 나가사키를 방문한 후, 마카오와 마닐라를 통해 최근에 이곳 꼬리아 델 리오에 닿은 스페인 신부를 통해, 쓰네나가의 사망소식을 전해들었다. 1622년, 그는 사망했다고 한다. 여기에 나와 나오끼를 두고 떠난 후, 원래 왔던 길을 역으로 해서 귀국길에 올랐다고 한다. 아바나에서 산 후안 데 울로아를 지나 베라끄루스와 뿌에블라, 그리고 멕시코시티에서 잠시 머문 후, 태평양을 건너기 위해, 아까뿔꼬에 도착, 거기서 배를 탔다고 한다. 그러나, 그 배는 직접 일본을 향하지 않았다. 우리가 일본 센다이를 출발할 때 탔던, 산 후안 바우띠스따 호는 이미 스페인 사람들에 팔려 아까뿔꼬와 마닐라 노선에 투입된 상태였다. 결국, 루이스 신부와 쓰네나가 일행은 1616년 여름 세비야를 떠난 후, 1618년 6월 20일에야 마닐라에 도착했고, 1620년 9월 22일, 쓰네나가와 몇 명의 사무라이들 만이 나가사키 항에 도착했다고 한다. 이때 루이스 신부는 함께 도착하지 않았다고도 했다. 루이스 신부는, 처음 동양 선교를 위해 마닐라에 온 이후 2년 동안.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는 먼저 한자와 일본어를 배운 것은 물론, 필리핀과 마카오 등 주변 지역에 대해서도 소상히 연구했다. 따라서, 다시 그곳 주변에 머물게 된 상황에서, 윤훈을 두고 나와 여기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했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어쨌든 참으로 길고도 힘든 항해를 했으니, 7년간의 여행으로 지친 쓰네나가는 급속도로 쇠약해졌으며, 일본 내에서는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더욱 심해져 활동할 입지도 매우 약해졌다고 한다. 스페인 여행 당시 40대 중반이었던 그는 결국 50을 갓 넘긴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미야기 현의 한 절에 안장되었다고 한다. 그는 책임감이 강했고, 용맹했고 솔직했다. 미지의 바다인 태평양을 과감히 건넜다. 수많은 위험 속에서 유럽...

[연재소설] 귀형(세르반테스를 만난 조선인) / 39.로뻬 데 베가(Lope de Ve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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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여기! 로뻬 데 베가의 책에 대한 언급도 있습니다.” 또 다른 자료를 읽던 훌라아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로뻬 데 베가라면, 세르반테스와 같은 시대의 유명한 극작가 아닙니까? 문학사 수업에서 가장 많이 다룬 작가 중의 하나로 기억됩니다만. 세르반테스와 경쟁자였으며, 세르반테스는 그를 [돈키호테] 위작의 작가라고 추측했다는 교수님 말씀도 생각납니다.” “네, 맞습니다. 그는 당시 아시아에서 들어오는 선교에 대한 여러 자료를 가장 먼저 접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의 글쓰기는 대단해서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작품을 쓴 작가로, 아직도 기네스북에 기록되어 있을 겁니다. 그의 인기에 대해 아마 자존심이 대단했던 세르반테스가 부러워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를 ‘자연의 괴물’이라고 할 만큼, 그의 글쓰기 재주에 대해 비난과 감탄을 함께 했으니까요. 그럼, 이것도 함께 읽어볼까요?” 훌리아와 종국은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내가 꼬리아 델 리오에 머물면서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동양에서 와서 이곳을 통해 세비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다. 외교관들도 있었고, 대부분은 선교사들이지만, 상업을 하는 사람들도 꽤 많았으며, 그 중에는 단순한 여행가와 모험가도 있었다. 내가 이곳에 정착한 이후, 일본인들의 발길은 완전히 끊겼다. 간혹 아시아로부터 선교사들이 들어올 때는 일부러 집으로 불러 극진히 대접했다. 반갑기도 하고, 일본과 조선의 상황을 듣고자 했다 . 그러던 중, 올해 즉 1618년 로뻬 데 베가가 지은 [일본에서의 첫 번째 순교자들]이란 3막의 시극과, [신앙의 승리]라는 역사 서사시 작품이 출판되었다. 그는 각 교파 선교사들이 보내주는 자료와 마드리드로 직접 찾아와 들려주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작품을 썼던 것이다. 그에게 매우 인상적인 것은, 신앙적으로 오래된 유럽에서 신교의 등장과 대결에서도 목숨까지 바치지는 않는데, 어찌하여 이제 새롭게 기독교를 접한 동양에서 순교자들이 많이 나올 수 있는 지에 대한 것이었다. 결국, 동양에서의 순교를 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