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강의] '등장인물'인가, '작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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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MJfzBbFFSJ4 https://www.youtube.com/@Dali-Imagination-Space #Metafiction #메타픽션 #다층적 서술자 #작가의 죽음 #독자 반응 비평 #수용자 이론 #작가의 권위 해체 #현실과 허구의 교차 #원작과 위작의 긴장 #인물의 자기인식 #독자의 공동 창작 #위작 #플롯의 수정과 전환 #기사소설의 패러디 #서사 전통 성찰 #텍스트의 자의식 #자기 검열 #다성성 #경쟁하는 목소리 #해석의 개방성 #의미 갱신 #desengaño #engaño

[하루] 산 속의 새가 갈매기 소리를 낼 때 / Las gaviotas en el mon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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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속의 새가 갈매기 소리를 낼 때 하루 하루는 기적이다! 바닷가 돌이 산의 돌이 되는 것은 기적 중 기적이다! 충청남도 서천의 바다를 바라보던 돌이 경기도 가평으로 옮겨졌다! 1년 동안 낯선 잣나무 숲에 누워 사방를 살폈다! 키 큰 나무들 사이로 변화하는 하늘을 봤다! 온통 안개로 자욱했던 시간도 있었다! 하늘거리던 꽃들과의 추억도 맘에 담았다! 산들 바람이 달궈진 몸을 식혀주기도 했다! 비와 함께 강한 바람이 몰아치기도 했다! 낙엽을 덮고 붉은 잠에 설렌 적도 있다! 하얀 이불을 덮고 하얀 꿈을 꾼 적도 있다! 이렇게 산 속 자연에 빠져 있었다! 그러다 그러다 저 높이 끼럭 끼럭 날아가는 기러기 떼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리를 지어 끼룩 끼룩 소란피우던 갈매기들이 생각났다! 짠향을 잃을 만큼 잊혀져 있던 그 바다가 떠올랐다! 바다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치게 피어올랐다! 몸에서 날개가 솟았다! 깃털이 날개를 덮었다! 아홉 마리의 새가 되었다! 산 속 새들이 갈매기 소리를 낸다!                                        

[하루] 지구에서 한반도를 파냈다! 벽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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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 한반도를 파냈다! 벽에 걸었다! 주차장 공사를 위해 땅을 파다가 돌을 발견했다! 모양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은, 뭔가를 연상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흙을 제거하고 보관하던 중, 연상된 그 모양을 살려보기로 했다! 화강암 중에서도 크기에 비해 무게가 많이 나간다! 단단하고 무거운 돌을 돌담 벽면에 고정해봤다! 바닥에 있을 때보다, 형체가 더 드러난다! 집을 찾아오는 외국인들에게 물었더니, 사람의 얼굴 형상 같다고 말한다! 아무런 영감을 주지 않은 모양인데, 굳이 물어보니 이런 답이 나온 것이다! 매우 추상적인 조각품 같다고도 한다! 예술작품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이런 식으로 감상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돌은 그냥 돌인데, 어떤 사람에게는 눈길조차 끌지 못하는 돌이다! 어떤 이에게는 지구의 한 부분을 떼어다 놓은 작지만 크고 위대한 돌이다!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가치'도 달라진다! '진짜'와 '가짜'가 있을 수 있을까? '진실'과 '거짓'이 있을 수 있을까? '예쁘다'와 '추하다'가 있을 수 있을까? 이렇게 되면, '너'와 '나'가 다를 수 있을까? '세상'은 '해석'이다! 해석으로 '행복'과 '불행'도 결정된다! 물론, '인간 세상'이란 조건이 붙는다! 나는 지금 '어떤 마음 상태'인가? 나는 지금 세상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가? 

[DQ] [돈키호테]가 소설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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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가 소설이라고?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를 쓸 때, 작품의 장르는 '소설', 즉 'Novela'가 아니었다. 그가 소설로 여겼던 것은 복카치오의 [데카메론]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가 [모범소설](1613)을 낸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여기에 그는 'Novela'와 'Ejemplar'라는 두 단어를 써, 제목을 단 것인데, 즉 짧은 이야기 12편을 묶어낸 것은 이태리에서 나온 작품이 100편의 이야기를 한 데 묶은 것을 따른 것이니, '소설'이다. 즉, 소설은 짧은 이야기들의 묶음이었던 것이다. 거기에 세르반테스는 자신의 묶음을 '모범'이라고 부른 것은, 보카치오와는 달리 12편을 유기적으로 엮었다는 의미였다. 말하자면, '생명체', 즉 '사람'은 얼굴로만 이뤄지지 않고, 몸통, 손과 팔, 그리고 다리 등 모든 것들이 조합되어야 가능하다는 생각으로, 작품 역시 그런 구조와 내용으로 만들어져야 작품에 '생명력'이 있다고 보고, 자신의 작품은 그런 목적으로 엮어졌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세르반테스에게 [돈키호테]는 어떤 장르로 만들어졌을까? 여기에도 '새롭다'라는 수식어를 붙여야 할 것같다. 말하자면, 그는 기존의 문학장르로는 '역사'를 쓴 것이고, [돈키호테]는 역사이면서, 새로운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리스 사람들은 호메로스가 [일리아드]아 [오딧세이]를 읊을 때, 그것은 '역사'로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 우리 는 이 작품을 '문학'의 범주로 넣고 있지만, 신과 영웅의 이야기, 트로이의 전쟁은 실제로 있었던 역사였다. 호메로스도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 즉 'Historia'를 말하기 위해, 트로이 전쟁의 현장을 방문했어야 했다. (지금도 스페인어로 '이스또리아'라는 단어는 '이야기'라는 단어와 다르지 않다는 사...

[DQ] "정치는 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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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초, 정치 꽤 잘 하네! 산초가 돈키호테를 따라 나선 이유는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가족들의 생계를 위한 것. 아내는 자식들을 키우기 위한 일이라면, 산초가 오랫동안 집을 나가 있어도 받아들일 수 있다. 식구들이 먹고살 수 있는 정도도 좋지만, 만일 남편이 출세해서 아이들이 귀족 가문과 결혼할 수 만 있다면, 산초가 수 백 번 집을 나간다 해도 좋다. 이것은 집을 나서는 산초에 대한 아내의 요구이고, 사실 산초 개인적인 꿈이 있으니, 총독자리를 맡아보고 싶은 것이다. 스스로도 '남자로 태어나서 한 번 해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고, 돈키호테는 언제 이뤄질 지 모르지만, 꼭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한다. 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가족의 생계를 꾸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산초가 굳이 돈키호테를 따라 나선 것을 보면, 두 번째의 욕망이 더 컸다고 말할 수 있다. (산초가 아내를 설득하는 과정을 보면, 속으로는 자신의 목표가 있음을 숨기면서, 아내의 욕망을 건드리는 장면을 본다.) 사람은 남이 하는 것을 부러워할 때가 있다. 특히, 그것이 사람들 위에서 명령하는 자리라면, 더 멋지게 보인다. 산초도 그것을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공작이 바라따리아 섬의 총독자리를 주자(물론 공작부부가 만든 연극, 즉 허구적 상황이지만), 그는 돌변한다. 정말로 책임감 강하고, 현명한 통치자로 변신한 것이다. 그는 특별히 교육을 받지도 못 했다. 유일한 교육이라면, 그가 통치지역으로 떠나기 전 돈키호테가 따로 불러, 몇 가지 지침을 준 것 외에는 없다. 그러나, 자신의 앞에 펼쳐지는 여러 다툼에 대해 아주 현명한 판단을 한다. 사람의 심리까지도 잘 파악한다. 사람들은 그가 솔로몬과 같은 현명한 판관이라고 추앙한다. (역시, 모든 상황은 연극이지만, 그가 내리는 판결은 그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니, 이것 만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그는 밤에도 밖으로 나가, 민정을 살핀다. 누가 시킨 게 아니다. 사람들을 보호하고, 억울한 일을 해결하겠다는...

[연재소설] 귀향(세르반테스를 만난 조선인) / 16.자유(Libert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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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자유   “ 사실 , 나라의 발전에 기여한다고 하지만 , 모든 것은 자신의 자유보다 앞설 수는 없다고 생각하오 . 노예나 속박된 상황은 인간에게 가장 비참한 삶이라고 생각하오 . 그 어떤 이유도 , 한 인간을 함부로 구속하면 안된다고 생각하오 . 난 , 그들이 비록 조선으로 돌아가지 않았더라도 , 일본을 빠져나와 자기 의지대로 삶을 영위할 수 만 있었다면 , 그것이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하오 .” “ 네 , 배를 타고 일본을 떠나는 것 자체가 자유였습니다 . 사실 , 저는 운이 좋아서 예수회에서 공부를 할 수 있었지만 , 조선에서 끌려간 , 정확히 말하면 짐승처럼 잡혀간 수많은 사람들의 사정은 이루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참했습니다 . 가난이 습관화된 천민들도 있었지만 , 특히 어렵지 않게 살았던 양반들도 많이 잡혀갔습니다 . 일단 그렇게 된 상황에서는 이전의 신분을 주장할 어떤 권리도 없었습니다 . 자유가 없는 곳에 , 신분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 “ 전쟁은 그렇게 기존의 질서와 체제를 무너뜨리는 대사건이오 . 그것 때문에 모든 게 망가지고 , 그것 때문에 , 새로운 가능성도 열리는 것이겠지 .” “ 대부분의 조선인들은 조선과 가장 가까운 큐슈의 나고야로 이동하거나 , 나가사키 항에서 직접 노예나 노비로 팔려갔습니다 . 이미 아프리카를 통해 노예무역에 열을 올리고 있던 포르투갈은 , 아시아에서도 그 수요가 많아지자 공급처를 찾았는데 , 일본이 조선을 침략한 이유에는 , 그들에게 노예로 팔겠다는 상업적 목적도 있었던 것입니다 . 포르투갈의 상인과 일본의 상인 , 그리고 일본의 군부 , 거기에 기독교 신부들의 이해관계가 교차되면서 , 조선인은 그야말로 사냥되는 존재에 불과했습니다 . 일본은 서양 사람들을 만난 지 수십 년 만에 자신들보다 우월했던 조선을 무력으로 이길 수 있는 준비를 했습니다 . 아시아의 역사는 중국 , 고려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갔던 것이 , 그 방향을 바꿔 서양에서 일본을 거쳐 조선으로 들어오는 첫 번째 사건이 임진왜란...

[DQ] 바라따리아와 유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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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따리아와 유토피아 사람은 '현재보다 나은 내일'을 꿈꾼다. 현재가 힘들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모델은 서양에서는 '금의 시대'(황금시대)로 잡았다. 그리고 기독교가 들어온 후에는 '천국', 또는 '에덴동산'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금의 시대는 미래에 있을 시대가 아니라, 이미 있었던 때다. 거기서 미끌어져 내려와 지금은 '철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게 현실이다. 따라서, 힘든 현실은 과거 누렸던 금의 시대를 모델로 삼아, 추구하려한다. 그게 '이상'이고, '이데아'다. 이 이데아의 세계, 또는 천국은 존재했다고 믿어야 한다. 그래야, 그것을 '모방'할 수 있고,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 서양 문학의 대부분은 이런 이상사회에 대한 표출이다. 서양의 뿌리는 금의 시대에서나 에덴 동산에서 추방당한 일종의 콤플렉스에 빠져있으니, 내면의 세계에 이런 갈구는 당연할 지 모르겠다. 소크라테스로부터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 서양 학문의 뿌리에서부터 이 논의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으니, 어쩌면 그 모델이 정확하지 못한 동양에 비한다면, 그쪽이 더 체계적이고 학문적이고, 현실적이란 생각이 든다. 이런 전통의 선상에 [돈키호테]라고 예외는 아니다. 말하자면 세르반테스가 생각하는 금의 시대에 대한 생각이 담겨있다. 그런데 여기서는 보다 더 현실적이다. 말하자면 지리상의 발견 후, 그리고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이후, 이데아로 만 있을 것 같은 세상이 지구촌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 것이다. 여성들 만이 만든 세계가 있었고, 모든 사람이 완전 평등한 나라도 있다고, 현장을 경험한 사람들이 말했다. 세르반테스도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특히, 아메리카로 갔던 사람들이 벼락부자가 되었다는 소리도 들었다. 그래서 그는 아메리카에 가고자 많은 시도를 했다. 그러나 실패! 결국, 그는 [돈키호테]에 모...

[DQ] 추방된 인간의 콤플렉스와 과거시대에 대한 향수 (원전으로 돌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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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방된 인간의 콤플렉스와 과거시대에 대한 향수 'Ad fontes'라는 라틴어가 있다. '원전으로 돌아가라'는 의미다. 서양에서 원전이란 두가지 방향이 있다. 하나는 고대 그리스라는 서구문명의 출발점이며, 또 하나는 그보다 한참 뒤에 저기 지중해 남동쪽 예루살렘에서 온 기독교다. 원래 이 구호가 나온 것은, 전자에 대한 가치 회복이다. 후대에 르네상스라고 부르는 이 고전의 회복운동은 중세 기독교가 오랫동안 강한 힘을 발하다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중에 나타난 현상이다. 거기에는 이슬람세력과의 대결과 십자군 원정이 있었고, 기독교 자체의 부조리가 산처럼 쌓였으며, 상업 자본가들의 등장 등 이유는 많았다. '원전으로 돌아가라'가 고대 그리스 원전에 대한 재해석을 의미하기는 하지만, 이미 서구사회에 깊은 뿌리를 내린 기독교 때문에 자연스럽게 기독교적 원전, 즉 '성서로 돌아가라'는 말로도 통했다. 뭔가로 돌아가자는 구호를 외친다는 것은, 현재에 대한 불만과 비판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가 어렵고 부조리하고, 현재를 바꾸고 싶을 때, 원래의 상태를 갈구한다. '원전으로 돌아가라'는 말은 결국, '개혁정신'의 표출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미 예견된 것처럼, 서구사회는 '원전'에 대한 추구를 통해, 개혁의 외침이 커졌는데, 그 방향은 고대 그리스의 '황금시대'이며, 기독교의 '에덴동산'이다. 이렇게 르네상스는 황금시대와 에덴동산에서의 인간을 추구하고, 상호는 섞여서 설명되는데, 성서의 내용을 그린 그림에 그리스 로마신화가 섞이고, 성화의 인물에 당대 인물을 그려넣는 일이 발생한다. 과거에는 신성모독이라고 해서,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기독교적 인문주의'는 이런 절충형의 '개혁'의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어다. 그러나, 기독교의 신중심과 인문주의의 인간중심이 혼합된 이 단어는 당시 사회의 ...

[논문과 기고문] 깔데론의 Persona desnuda적 인물 구현과 극중극(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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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깔데론의 Persona desnuda적 인물 구현과 극중극   (『La vida es sueño』를 중심으로)                                                                                                                                               윤 준 식 I. 들어가는 말    스페인문학에서 세르반떼스 만큼이나 많이 언급되고 연구되는 작가를 찾으라면 바로 깔데론을 꼽을 수 있겠다. 세르반떼스와 영국의 셰익스피어가 동시대 양국의 대표작가라는 점과 기타 몇 가지 유사성에 의해 서로 비교 언급되고 있지만, 깔데론과 셰익스피어는 양자가 극작가라는 공통점 외에도 세계연극사에 중요한 한 획을 그었다는 점에서 상호 비교되며, 여기서 괴테가 말했던, “셰익스피어가 포도송이라면, 깔데론은 포도즙이다.”(Shakespeare era el racimo de uvas, y Calderón el zumo)라는 표현은 깔데론의 작품세계가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는 점을 지적해주는 예가 될 것이다. 영국의 작가에게 ‘세상은 연극’(Theatrum mundi: El mundo es un escenario)이라는 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