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강의] '등장인물'인가, '작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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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MJfzBbFFSJ4 https://www.youtube.com/@Dali-Imagination-Space #Metafiction #메타픽션 #다층적 서술자 #작가의 죽음 #독자 반응 비평 #수용자 이론 #작가의 권위 해체 #현실과 허구의 교차 #원작과 위작의 긴장 #인물의 자기인식 #독자의 공동 창작 #위작 #플롯의 수정과 전환 #기사소설의 패러디 #서사 전통 성찰 #텍스트의 자의식 #자기 검열 #다성성 #경쟁하는 목소리 #해석의 개방성 #의미 갱신 #desengaño #engaño

[연재소설] 귀향(세르반테스를 만난 조선인) / 23.로마(Ro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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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로마   프랑스 땅에서 나온 일행은 다시 사보니아와 제노바를 거쳐 , 1615 년 10 월 18 일 시비따베치아에 도착했다 . 그리고 , 10 월 29 일에는 로마에 도착했다 . 교황청에서도 환영행사를 마련해주었다 . 성 베르도 사원의 광장에서는 정복에 칼을 찬 사무라이들이 말을 타고 행진했고 , 그들을 로마의 기병들이 안내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 아무리 외국인이 많은 국제도시지만 , 여기 사람들에게도 큰 구경이 아닐 수 없었다 . 동양에서 온 기사들의 행세와 행동 하나하나가 너무나 인상적이었던 것이다 . 11 월 3 일 , 그러니까 음력 9 월 12 일 교황 빠블로 5 세를 알현하게 된다 . 참으로 긴 여정이었지만 ,   앞으로도 할 일이 많은 여행의 반을 완성한 것에 불과했다 . 로마는 또 다른 세상이었다 . 새로 조성된 마드리드보다 규모도 컸으며 , 오래된 도시 전체가 유물이나 다름없었다 . 돌로 만들어진 거대하고 고풍스런 건축물들 속에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 바티칸을 방문하면서 석희는 이곳이 세상에 없는 천상의 세계라고 생각했다 . 상상하기 어려운 넓은 광장의 양쪽으로 길게 뻗은 거대한 회랑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 수 많은 조각상들이 눈에 들어왔다 . 조선의 변방 바닷가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기에 더욱 더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세상은 믿기 어려운 현실이었다 . 교황청에서 사람들은 라틴어를 쓰고 있었다 . 석희는 스페인어를 배우면서 라틴어도 함께 배웠기에 내용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 루이스 신부도 라틴어를 사용했는데 , 교황청에서 빠블로 5 세 교황과의 만남은 기독교인으로서 큰 영광이었다 . 교황은 세르반테스와 비슷한 나이에도 불구하고 , 고생에 찌들고 피곤하게 만 보였던 세르반테스와는 정반대로 풍채도 좋고 , 얼굴에 윤기가 흘렀으며 , 목소리도 우렁찼다 . 면담을 마친 후 , 교황은 자리를 떴고 , 의전관이 일행에게 다가오더니 화가가 그림을 그릴 것이라고 했다 . “ 안녕하세요 . 저는 안또...

[DQ] 비밀스런 미소와 호두알 만한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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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리스와 로마를 하나로 묶어 부르는 경향이 있다.  말하자면, '그리스로마'라는 표현이다.   그만큼 두 시대는 너무나 많은 것이 닮았다는 의미다.  그러나 시대의 순서를 보면, 그리스가 먼저고, 로마가 다음이다. 그렇다면, 그리스와 로마는 같은 문화권이거나, 같은 나라, 또는 로마는 그리스를 모방했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 둘 간에는 모든 게 포함된 관계인 것은 맞다. 게다가 로마는 그리스를 대놓고 모방한 것도 맞다. 그리스의 호메로스가 정리해 놓은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는 그야말로 대단한 영감의 도가니다. 이 영감은 문학, 문화, 철학, 예술의 근거가 되었을 뿐 아니라, 그 범위는 거의 무한대로 넓어진다. 서양의 역사적 사건들도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서양문화는 이제 글로벌화 되어 우리의 삶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돈키호테와 산초가 집으로 돌아오면서 어느 여인숙 방 벽에 걸려있는 천에 흐릿하게 그려진 그림을 보게 된다. 허름한 방에 투박하게 그려진 그림에서 돈키호테가 똑똑히 본 것은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나가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에게 납치되면서도 그 입에는 미묘한 미소를 띠고 있다는 사실이며, 또 다른 그림에서 본 것은 아이네이아스가 트로이를 재건하기 위해 자신을 보살펴 준 카르타고의 여인 디도와 헤어지는 모습이다.  그녀의 슬픔이 얼마나 컸는지, 눈물을 닦는 천이 손수건이 아니라, 이불과도 같이 크다. 뚝뚝 떨어지는 그녀의 눈물은 호두알 만하다고 표현한다. 작품 속 그림에 대한 돈키호테의 설명을 근거로 본다면, 돈키호테는 헬레나 보다는 디도에게 마음이 더 간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돈키호테의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다. 자신이 그 때 태어났었다면, 파리스를 없애버리는 것이 이 두 사건을 막는 일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파리스가 황금사과를 아프로디테에게 주지 않았다면, 헬레나를 납치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그리스...

[DQ] [돈키호테]는 돈키호테와 산초 간 '대화'의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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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는 돈키호테와 산초 간 '대화'의 공간이다! '생각'(Pensamiento)은 '말'(Palabra)을 통해 구체화된다. 그 말의 구체화는 '논리'(Lógica)가 되는데, 그 과정에 '대화'가 있다. 생각은 말이라는 아주 제한된 수단을 통하지만, 말이 되어야 그것이 입 밖으로 나온다.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상대가 있는 대화를 통해 표출되고, 이제 대화는 논리의 대결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대화에 들어오는 각자의 논리는, 그것이 어떤 지향점을 가질 때, 즉 어떤 '판단'이나 '결정'을 내릴 때, 또는 어떤 주제에 대한 '실체'나 '본질', 그리고 '진실'이라는 하나의 '결론'으로 묶어내야 할 때, '논쟁'과 '타협'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대화'라는 우리 말에서 위의 경우에는 ''Diálogo'를 적용한다면 , 'Conversación'으로서의 대화는 그와 좀 결을 달리한다. 'Diálogo'에 적용했던 설명처럼, 'Conversación'을 설명한다면, 이것은 어떤 결론을 위한 대화라기보다는, 각자의 목소리를 내지만, 어떤 도달점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래서, 사업적인 대화보다는 일상의 대화에 더욱 가깝다. [돈키호테]의 주요 두 인물 간 대화를 말하기 위해, 굳이 구분해봤다. 돈키호테는 돈키호테 방식대로, 산초는 산초 방식대로 말을 한다. 짜증을 내는 돈키호테가 산초에게 꾸짖기도 하고, 핀잔을 주기도 하지만, 산초의 말하는 방식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 산초 역시, 돈키호테에게 풍차를 풍차라고 말하지만, 돈키호테는 달려갈 뿐이며, 달려가는 돈키호테 앞을 산초가 가로 막지는 않는다. 각자 자신이 보는대로 자신의 논리대로 말을 한다. 상대를 억압하...

[문예] 루벤스 앞에 선 '조선사람', 그 진실은?(IV-4)(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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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스 앞에 선 '조선사람', 그 진실은?(IV-4)(반전) 사실,  루벤스의 조선남자는 [베니스의 개성상인]에서 구상했던 프란시스꼬 까르레띠와 함께 로마에 갔을 안또니오 꼬레아도 아니고, 위의 글에서 상상해봤던 일본의 하세쿠라가  이끌던 사절단의 일원이었던 조선인도 아니다. 그는 마카오를 떠나 유럽을 방문했던 벨기에 출신 예수회 신부, 니콜라스 트리골트( Nicolas Trigault, 1577-1628) 신부와 함께 했던 조선인임을 밝힌다.                        루벤스가 그린 니콜라스 트리골트(Nicolas Trigault, 1617)                                                               니콜라스 트리골트(1617) 루벤스와 니콜라스는 1577년 같은 해에 태어났고, 모두 벨기에가 출발점(루벤스는 지금의 독일지역인 Siegen에서 태어났지만, 이내 퀠른 지역으로 이주한 후, 다시 벨기에의 Ambers에서 생활, 니콜라스도 지금은 프랑스 령이지만, 과거에는 스페인이 지배했던 벨기에의 땅, Douai지역 출신)이었으니, 두 사람의 공통점이며, 루벤스는 당시 예수회 신부였고, 아시아, 특히 중국에서 선교활동을 활발하게 했던 지역의 니콜라스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개인적인 친분도 있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

[인문학강의] 돈키호테가 본 두 그림 속 그리스와 로마의 차이 / Antigua G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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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동영상 유튜브 주소:  https://youtu.be/0-guPhqB5co

[문예] 루벤스 앞에 선 '조선사람', 그 진실은?(IV-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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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스 앞에 선 '조선사람', 그 진실은?(IV-3) 하세쿠라일행의 유럽방문과 루벤스의 그림에 나온 조선사람의 모습을 기본으로 이제 우리는 여러 가지 즐거운 소설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그림 속의 주인공에 대한 상상일 수 있는데, 의상을 봤을 때는 조선에서 입던 옷을 먼 로마 땅까지 가져올 수 있었다는 점이 놀라울 따름이다.  (의복을 보면, 겉의 옷은 ‘철릭’, 또는 ‘천익’이라고 하여 무관공복이며, 임진왜란 당시 평상 외출복으로 설명되며, 안의 옷은 창옷이라고 불린다. 상투도 보이지만, 그 위에 쓴 방건인 말총은 조선시대 양반계층이 평상시 쓰던 일종의 관모라고 한다.)                                     펠리뻬 3세(Felipe III) 물론, 그가 조선에서 간 게 아니고, 일본을 통해 갔다고 생각해보면, 그는 조선에서 갔을 양반 중 하나였을 가능성과 유럽방문단의 주목적 중의 하나가 일본 내 가톨릭신자를 보호하기 위해 로마의 지원을 이끌어내려는 것임을 감안하고, 하세쿠라(당시 일본에서는 사무라이 계급이 주로 가톨릭세례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를 비롯한 일행들이 대부분 가톨릭신자였을 것을 추측해봤을 때, 그도 이미 가톨릭신자로서 나름대로 그리 나쁜 대접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고, 일본인과 조선인 간의 통역, 또는 적어도 조선인의 대표 역할을 맡았을 가능성이 높게 예상되며, 이 복장은 세례 등 중요한 행사를 위해  정복으로 가져갔을 가능성도 짐작해 볼 수 있겠다.  가톨릭 세례인으로서 스페인의 왕을 만나고, 로마에서 교황을 만난다는 가정 하에서 일본을 출발했다라면, 그가 분명 처음부터 자신이 애지중지 보관해왔던 조선의 정복을 준비해 갔을 것이란 건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우리의 상상은 더 나가, 이태리 상인과 함께 안또니오 꼬레아...

[문예] 루벤스 앞에 선 '조선사람', 그 진실은?(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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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스 앞에 선 '조선사람', 그 진실은?(IV-2) 이태리의 상인을 따라 당시 안또니오 꼬레아가 로마에 도착한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거의 개인적인 규모였다면, 루벤스를 만나는 과정에 대해서는 확실한 근거가 없다 하더라도, 하세쿠라가 이끈 일본 사무라이 일행은 일단 규모가 크고, 로마에 도착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환영을 받았으며, 로마에 대대적으로 알려진 상황에서, 교황 바울5세를 알현하는 등 고위층과의 접촉이 이뤄졌으며, 로마에서 상당 기간 머물렀던 점을 감안한다면, 당시 화가로서, 그리고 외교관으로서 벨기에는 물론, 스페인, 이태리 등 유럽을 활발히 움직였던 루벤스와의 상면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클로드 데루아가 그린 사절단의 일본측 대표 하세쿠라 (1615년, 로마)                                   루벤스의 작품에는 나오지 않지만, 하세쿠라의 초상은 클로드 데루아(Claude Deruet: 1588–1660)에 의해 그려졌을 정도로, 대규모로 찾아온 이국인들의 방문은 당시 큰 반향이 있었던 일이었다. 클로드 데루아가 그린 방문단 단장 하세쿠라의 경우는 그야말로 전신 초상화라는 점을 비교하면, 루벤스가 그린 조선사람은 정식 초상화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인데, 성공한 안또니오 꼬레아를 대상으로 루벤스가 그렸을 것이라면, 적어도 유화로 된 정식 초상화가 되었어야 할 것이었다. 루벤스의 [성 프란시스꼬의 기적]에도 동...

[인문학강의] 지금, '대화'하는가, '대화'하는가? / Diálogo, o Conversació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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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의 동영상 유튜브 주소:  https://youtu.be/9y8wliea4Dg

[문예] 루벤스 앞에 선 '조선사람', 그 진실은?(IV-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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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스 앞에 선 '조선사람', 그 진실은?(IV-1)                                                         루벤스의 [조선옷을 입고 있는 남자](A man in korean costume, 1617)(Getty미술관,미국)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의 작품에 나오는 조선인(《한복 입은 남자, A Man in Korean Costume》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왔던 이 그림은 미국 로스 엔젤레스의 폴 게티 미술관으로 옮겨지면서 《조선 남자, Korean Man》란 이름이 붙여진다.)에 대한 해석이 분분한데, 그림 속 주인공에 대한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임진왜란 때 잡혀간 조선인이며, 그는 다른 조선인과 함께 일본에서 당시 아프리카의 노예를 구입해서 여러 지역으로 판매하던, 어쩌면 상인으로서는 최초로 세계일주를 한 이태리인 프란체스꼬 까를레띠라(Francesco Carletti: 1573-1636, 『나의 세계일주기』라는 책에 안또니오 꼬레아(Antonio Corea)가 등장한다.)라는 상인에게 인계되었다. 이 이태리인은 그중 똑똑하고 외국어를 쉽게 습득한 한 명을 이태리로 데리고 가는데, 그가 바로 안또니오 꼬레아이고, 그의 이태리 입국시기와 당시 벨기에, 스페인, 로마를 오가면서 활발히 활동한 화가이면서 외교관이었던 루벤스의 로마 방문 시기를 조합하여, 그림 속의 조선인을 안또니오 꼬레아라고 가정하고 있다.  Francesco Carletti의 이동경로 아울러, 이보다 좀 더 허구적인 요소를 부가하여, 안또니오 꼬레아가 부를 축적한 후, 루벤스와 같은 유명한 화가를 불렀고, 자신의 전신 초상화를 그리게 할 만큼 경제력이 대단했다는 ...

[논문과 기고문] 따마요 이 바우스의 新극작법(De la imitación a la creación en el teatro de Tamayo y Ba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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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마요 이 바우스의 新극작법 (De la imitación a la creación en el teatro de Tamayo y Baus) -모방에서 창작으로의 전환- I. 들어가는 말 스페인문학에서 19세기는 18세기와 더불어 중요성이 부여되지 않은 채 별로 다뤄지지 않 고 있는 게 사실이며, 특히 극에 있어서 이전의 황금세기나 이후의 20세기에 비해 언급 정 도가 상당히 낮은 게 현실이다. 18세기 프랑스 문학이나 19세기 독일 문학이 돋보임에 비해 동시대 스페인 문학에 대한 평가는 상대적으로 미약하며, 이 경향은 극 분야에 있어서도 마 찬가지다. 이 시대 스페인 극에서는 모라띤(Leandro Fernández de Moratín: 1760-1828) 및 호세 소리아(José Zorrilla: 1817-1893) 정도가 언급될 정도고, 그것도 창작보다는 외국작품 의 번역에 치중된 양상을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본 연구의 대상으로 잡고 있는 따마요 이 바우스(Manuel Tamayo y Baus: 1829-1898)는 덜 알려진 작가지만 그의 작품 중 특히 『신극 Un drama nuevo』은 당시 극의 현실과 새로운 극에 대한 활로 모색의 측면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보고 그의 연극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따마요 이 바우스에 대한 연구는 전혀 되어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1) . 스페인 황금세기 연극 이후 18, 19세기의 연극에서는 주목받을 만한 극작가나 작품이 나오지 못했다는 사실 2) 과 그로 인한 연구자들의 무관심이 첫째 원인이라고 지적할 수 있다면, 바로코시대 로뻬 데 베가(Lope Félix de Vega Carpio: 1562-1635)의 연극론이 세간에 주목을 받고 많은 추종자 들이 그 작법을 따르게 되면서, 이후 극창작에 있어 한가지 지침으로 자리한 것에 비한다면, 따마요 이 바우스에게는 그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