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강의] '등장인물'인가, '작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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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MJfzBbFFSJ4 https://www.youtube.com/@Dali-Imagination-Space #Metafiction #메타픽션 #다층적 서술자 #작가의 죽음 #독자 반응 비평 #수용자 이론 #작가의 권위 해체 #현실과 허구의 교차 #원작과 위작의 긴장 #인물의 자기인식 #독자의 공동 창작 #위작 #플롯의 수정과 전환 #기사소설의 패러디 #서사 전통 성찰 #텍스트의 자의식 #자기 검열 #다성성 #경쟁하는 목소리 #해석의 개방성 #의미 갱신 #desengaño #engaño

[문예] 소리아, 스페인적 저항정신의 뿌리! 스페인의 자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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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픈 역사의 상징, 소리아(Soria) ‘소리아’처럼 허탈한 스페인을 표현한 도시는 없을 것 같다. 적어도 '98세대'(Generacion 98)의 젊은이들은 작으나 고고했던 땅 소리아를 붙들고, 국정의 혼란에 안타까워하며 후진국으로 떨어진 스페인을 불러 댔다.  아름답지는 않지만 모든 사람이 뭉쳐서 그 강대했던 로마인들에 항거하고, 그 정신으로 황금세기(Siglo de oro) 를 일구어 낸 스페인의 정기가 지금은 처참한 흔적만을 드러낸 소리아처럼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소리아의 옛성, Castillo de Soria) 소리아의 황폐함은 스페인의 황폐함 그 자체를 반영하고 있으며, 적막함 또한 마치 나라를 잃은 듯한 허탈함을 보여 준다. 이 움직임 없는 작은 도시에는 먼지바람과 간간이 들리는 개 짖는 소리뿐, 98세대 시인 안또니오 마차도(Antonio Machado)의 마음처럼 비어 있다.                                           「소리아에서」 오, 그래! 나와 함께 가자꾸나 소리아의 평원으로, 적막한 오후, 보라색 산들, 냇물을 따라 서 있는 포플러 나무들, 회색의 창백한 땅이 꿈꾸는 녹색 꿈, 쇠퇴한 도시의 깊고 깊은 서글픔이 이 영혼까지 사무치는 그 속 깊은 곳에 있었더냐? 높은 평원 누만시아의 숭고한 사람들, 신앙 깊은 기독교인으로서 주를 받들었으니 스페인의 태양은 그대들에게...

[문예] '출로'(Chulo)와 '따까뇨'(Tacañ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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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지역 사람들에 대한 별칭 바야돌리드 사람을 지칭하는 말은 많을 것이나 가장 흔한 별명으로 ‘뿌셀라노’(Pucelano)가 있다. ‘뿌셀라’(Pucela)라고 하는 이곳의 옛 지명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식의 별칭은 그 지역 사람들의 일반적인 특성에 맞춰 지어졌는데, 스페인의 여러 도시마다 별칭들이 있다.  주변의 빨렌시아(Palencia) 사람에 대한 지칭은 ‘만따’(Manta)이며 살라망까(Salamanca) 사람은 ‘차로’(Charo)이다. 이 밖에 ‘출로’(Chulo)는 일반적으로 마드리드 사람을 지칭할 때 쓰며, 성격이 쾌활하고 자존심이 강한 남성을 가리킨다. 또한 앞서도 나왔지만 상업적인 분위기 속에서 물질에 치우친 성격을 가진 까딸루냐 사람을 일컬어 ‘따까뇨’(Tacano)라고 한다.           갈리시아의 경우에는 그 지역의 여러 가지 분위기, 특히 어업 지역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안 좋은 일에 대한 행운을 빌고 사고를 피하기 위해 미신에 많이 의존한다는 의미에서, 이곳에 사는 사람을 ‘수뻬르스띠시오소’(Supersticioso)라고 말한다. 세비야 사람에 대해서는 그들이 농담을 많이 하고 신중하지 않다는 이유로 ‘후에르기스따’(Juergista)라는 별명이 붙는다.

[문예] 스페인으로 들어온 모든 것들이 혼합된 곳, 사라고사 (Zarago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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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라곤, 스페인 땅의 모든 역사를 품다! 까스띠야(Castilla) 왕국의 이사벨(Isabel)과 아라곤(Aragon) 왕국의 페르난도(Fernando)가  1469년에 결혼 을 함으로써 이후 스페인 통일의 기틀이 마련되었음을 기억한다면, ‘아라곤’이 국토회복(Reconquista) 이후의 정치 상황에서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을지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물론 남부의 까스띠야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힘이 약했지만, 그런대로 강력한 왕국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 아라곤이다.                                    로마와  아랍 시대 에 중요한 도시였던 ‘사라고사’(Zaragoza)가 있으며, 북부 스페인의 젖줄인 에브로(Ebro) 강이 통과하고 있어 땅이 비옥하다. 아랍의 건축과 기독교인들의 건축이 공존하니, 특히 북부 지역으로는 드물게 아랍의 자취가 강하게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주요 도시로는 ‘우에스까’(Huesca)와 ‘떼루엘’(Teruel), ‘하까’(Jaca) 등이 있다. 사라고사는 아라곤의 중심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현재의 스페인을 대표하는 중요한 몇몇 도시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

[문예] [세상을 보는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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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코의 아라곤에서 우리에게 보내온 경구(Aforismo)들 아라곤(Aragon) 지역 출신 인물들 중에는 우리 귀에 익숙한 사람들이 많다. 이사벨 여왕의 남편 페르난도 엘 까똘리꼬(Fernando II, el Catolico)를 비롯하여, 발따사르 그라시안(Baltasar Gracian), 호세 루산(Jose Luzan y Martinez),  고야 (Francisco Jose de Goya), 그리고 근현대에 들어서는 스페인의 노벨의학상 수상자였던  라몬 이 까할 (Ramon y Cajal), 작가  라몬 센데르 (Ramon Sender), 극작가  하르디엘 뽄셀라 (Enrique Jaediel Poncela), 20세기 스페인의 대표적인 영화감독이기도 한  루이스 부뉴엘 (Luis Bunuel) 등이다.                                   <La Venida de la Virgen del Pilar a Zaragoza> (1765)( Museo Camon Aznar ,  Zaragoza ) 우리에게 그리 낯설지 않은,  스페인 바로크 시대의 작가인 발따사르 그라시안(1601~1658)의 출생지가 바로 사라고사 이다.  그라시안은 젊어서 예수회에 들어갔으며, 그가 사제 서품을 받고 머문 곳들은 발렌시아(Valencia)와 레리다(Lerida, Lleida), 간디아(Gandia)와 우에스까(Huesca) 등지이다. 그라시안의 작품을 읽고 있으면 고전적인 가르침을 얻게 된다. 상상을 뛰어넘는 문체의 난해함에도 그 안에 들어 있는 진리가 너무나 평범한 것이라는 데 혼란을 느낀다. 단순한 내용을 어렵게 표현하는 것은 그의 재주였다.   ...

[문예] 공화파의 본거지, 하까(Ja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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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서 왕이 제거되고 공화국이 성립된 것은 1873년 이사벨(Isabel) 2세를 쫓아낸 후와 1931년 알폰소(Alfonso) 13세가 쫓겨난 후의 일이다.  특히 알폰소 13세의 통치 시기인 1923년에서 1930년에는 미겔 쁘리모 데 리베라(Miguel Primo de Rivera)라고 하는 독재정치가, 정확하게 말하면 정부 수반이 스페인을 좌지우지하던 시대였다.                                                   (위에서 본 하까, Ciudad de Jaca)  그는 북아프리카 모로코 지역에서의 패배와 까딸루냐(Cataluna) 분리 운동 등 사회의 혼란을 틈타 정치의 최정점에 올랐으며, 왕도 어찌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을 과시하였다. 왕의 묵인하에 사회 안정이란 미명을 내세워 언론과 결사의 자유를 탄압하고 상하원의원을 무력화해, 사회 안정을 국민들이 바라는 방향으로 이끌지 못했다. 쁘리모 데 리베라의 민주주의 파괴 행위에 대해 국민이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공화파들이 들고 일어났고, 제일 먼저 운동이 일어난 곳이 1930년의 ‘하까’(Jaca)였다. 성공하지 못했지만 이후 스페인이 공화국으로 자리 잡는 데 중요한 역할은 한 것만은 사실이다. (깐단추 스키장, Candanchu) 하까는 산이 높고 험하며 눈이 많이 오기 때문에 스페인 내륙의 여름 휴양지로 적당하다. 피레네 산맥을 경계로 프랑스와 마주하고 있으므로 하까에서 휴양하면서 쉽게 프랑스 남부에도 다녀올 수 있어 좋다. 프랑스에서 건너온 사람들도 눈에 많이 띈다. 여름보다는 겨울에 사람이 붐비는 이유는 깐단추(Candanchu)를 비롯하여 스페인의 대표적인 스키장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처의 우에스까(Huesc...

[문예] 어디서 온 사람들이지? (바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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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서 온 사람들이지? 뚝심 있는 사람들이 사는 빠이스 바스꼬 (Pais Vasco) 빠이스 바스꼬는 이베리아 반도 내에서 인종과 언어의 섬으로 여겨질 만큼 스페인의 오랜 역사 속에 독립된 형태로서 자신들의 순수성과 역사를 이어 왔다. ‘빠이스’(Pais)라는 단어는 ‘국가’라는 의미인데, 바스꼬 지역이야말로 이 표현을 좋아하고 또 이 말이 적절하게 쓰이고 있는 실정이다. 색다른 이름에 말 없는 그리고 우직스럽게 보이는 인상의 스페인 사람이 있다면 바스꼬인이 아닌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거친 바다와 험한 산, 거기에 변화무쌍한 날씨를 배경으로 살아가는 이 고장 사람들이 풍기는 분위기는 강인함 그 자체이다.                                                                                                (산 세바스띠안의 해변, San Sebastián) 까딸루냐(Cataluña) 지역 출신이라면 자신의 출신지를 밝히고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바스꼬인들은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에 대한 경계의 시선이 남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인종의 섬처럼 자신의 종족을 지켜 온 바스꼬인들의 뿌리는 아직도 알 수가 없지만, 어쨌든 라틴족의 피가 섞이지 않은 것만은 사실인 듯싶다. 이 지역이 워낙 첩첩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대제국 로마의 점령에서조차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었으며, 아랍인의 피도 이들과 섞이지 못했다. 여기서는 푸른 눈에 금발의 머리를 가...

[문예] 로욜라와 예수회 (스페인에서 나온 예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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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욜라(Loyola)와 예수회(Jesuita) 스페인은 세계에서 인구 대비 가톨릭 신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으며, 어느 곳을 가더라도 이탈리아에서 보는 이상으로 규모가 큰 성당들이 자리 잡고 있다. 스페인의 역사를 보면 기독교 역사, 특히 구교의 역사와 깊은 관련을 맺어 왔음을 알 수 있는데, 나라의 통일에 가톨릭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정치와의 밀접한 관계 속에서 발전해 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로욜라, Ignacio de Loyola) 가톨릭인이면 스페인 사람이요, 그렇지 않으면 이교도나 반역자로 처형되었던 시기가 있었고, 그 전통으로 가톨릭인으로서의 자부심도 강한 국민이다. 1517년 루터에 의해 불이 지펴진 종교개혁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구교의 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사실 스페인에도 신교인(Protestante,쁘로떼스딴떼)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리고 그들의 교회가 있기는 하지만 수가 상대적으로 미미한 편이다. 스페인에서 신교의 불이 지펴진 곳은 남부 까디스(Cadiz)를 중심으로 한 근접 지역이다. 영국에서 불어온 신교 및 신약성경 번역이 이곳에서 처음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존 성당에 비한다면 교회 건물은 작은 편이고, 시내 중심보다는 시골의 외진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선교하는 예수회 신부들, Jesuitas) 15세기 로마 교황청을 향한 루터의 반발은 교회의 개혁을 갈망하던 사람들과 교황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려던 많은 유럽의 세력가들 사이에서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독일과 스위스, 네덜란드 등으로 퍼져 나갔다. 그 영향으...

[문예] 스페인의 언어 분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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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언어 분포 스페인어의 주종을 이루는 것은 기원전 3세기부터 퍼지기 시작한 라틴어인데, 이 라틴어를 고전라틴어(Latin clasico)와 통속라틴어(Latin vulgar)로 구분한다면 후자의 통속라틴어가 발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라틴어는 로마인들의 반도 도착과 함께 들어왔으며, 스페인 출신의 세네까(Seneca) , 루까노( Lucano),  낀띨리아노(Quintiliano) 등의 위대한 문필가 및 우리가 익히 아는 『명상록』으로 유명한 마르꼬 아우렐리오(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Marco Aurelio, Marcus Aurelius) 황제가 로마 시대에 크게 활동한 것으로 볼 때, 로마와 스페인 간의 언어 차이는 크지 않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물론 로마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스페인에서 이탈리아에 가장 가까운 언어가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탈리아와 관련된 스페인 문화의 특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스페인의 언어 분포) 스페인어에는 라틴어 이전에 이미 켈트족(Celta)들의 언어와 이베로스(Ibero)인들의 언어, 그리고 히브리인들의 언어와 게르만의 언어가 존재하였고, 로마인들 다음으로 들어온 아랍인의 영향이 크게 자리하고 있어서, 전면적이고 근간이 되는 언어는 라틴어이되 외적 요소가 많이 가미된 형태라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바스꼬(Vasco)인들의 언어가 스페인어와 구분되는 것도 알고 보면, 그곳의 지리적인 특징에 따라 고대어가 독립적으로 유지, 발전되었기 때문이며, 까딸루냐 지역의 까딸란(Catalan)이나 갈리시아 지역의 가예고(Gallego) 등도 역사적, 지리적 특징에 따라 스페인어로 통칭되는 까스떼야노와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슬라스 까나리아스의 언어가 다르거나, 안달루시아 지역의 언어가 다른 것은 지방의 방언 정도로 풀이된다. 즉 스페인어에는 이색어인 에우스께라(Euskera)가 있는가 하면, 유사어인 가예고, 까딸란, 바블레(Bable, 아스뚜리아스 지역의 언어...

[문예] 나를 위해서는 한 명의 게릴라라도 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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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위해서는 한 명의 게릴라라도 될 수 있어! “스페인어에는 ‘우리’(Nosotros)란 단어가 없고, ‘나’(Yo)만 있다.”는 표현이 있다.  스페인 사람들의 개인주의를 지적하는 말이다. 스페인 사람들은 스스로를 개인주의자라고 평하는 경우가 많은데,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개인주의’에 대한 개념과 구분하기 위해 ‘혼자주의’ 정도로 풀이하는 것이 더 적당할 듯싶다. 스페인 사람들은 고슴도치와 같아서 사회란 공간에서 살아가지만 자신이 그 사회에 끌어들여지려는 순간에는 가시를 곤두세우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내가 만들어서 내가 먹으면 된다는 식의 생각이 이들의 지배적인 가치관이다. 스페인의 개인주의가 나라의 발전에 방해가 되었다고 지적하는 이들이 있다.  '게릴라전법'(Guerilla)이 로마에 항거하던 스페인에서 처음 나왔다는 점도 개인주의, 즉 한 사회나  한 권력에 통합되지 않고 몇몇이 소그룹을 이루면서 대항하려는 스페인 사람들의 기질을 대변한다고 본다. 현재 한창 문제가 되고 있는 빠이스 바스꼬(Pais Vasco)의 분리주의 운동을 비롯하여 여러 지역의 지방색 살리기 운동 또한 이런 관점에서 풀이된다. 중남미를 한 때 유행처럼 휩쓸었던 게릴라의 이야기는, 그 뿌리를 스페인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겠다. 스페인인들의 개인주의는 개인이 자신이 편한 대로 행동하도록 내버려 두었으며,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원주민들과 자연스럽게 합쳐질 수 있었던 이유도 피부색과 문화의 차이를 두면서 정복해 나갔던 영국인들과는 달리 스스로의 기분과 판단에 따라 이루어진 개인주의의 결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스페인 사람들의 예술성은 개인주의에서 발달한 긍정적인 예가 되기도 한다.  개인주의가 만들어 낸 일화도 있다. 마드리드에 한 외국인이 왔다. 그는 방해받기 싫어서 문고리에 ‘방해하지 마시오’란 글귀를 매달았다. 그런데 얼마가 지나자, 청소하는 사람이 문을 두드리는 것이었다. 외국인이 의아한...